중국 대표 TV 업체 TCL은 2일(현지 시각)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2′에서 98인치 미니 LED(발광다이오드) TV를 공개했다. 세계 1위 TV 업체 삼성전자가 지난달 22일 세계 최초로 98인치 네오QLED TV를 4500만원에 출시한 지 불과 11일 만에 삼성과 같은 사이즈의 초대형 미니 LED TV를 선보인 것이다. 미니 LED는 100~20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크기 초미세 LED 4만개(98인치 기준)를 탑재해 화면 밝기와 선명도를 개선한 차세대 TV다. 부스에서 만난 TCL 관계자는 “올해 안에 삼성의 3분의 1 가격으로 출시할 것”이라며 “가격을 앞세워 유럽 시장에서 삼성과의 점유율 격차를 줄여나가겠다”고 했다. TCL은 삼성·LG에 이은 세계 3위 TV 업체다.
코로나 여파로 2년 만에 열린 올해 IFA에서는 ‘유럽 프리미엄 가전·IT 시장’을 겨냥한 중국 기업들의 공세가 거셌다. IFA 기조연설에 나선 5개 기업 중 2곳이 중국 기업이었고, 전시관 안팎의 좋은 입지들은 중국 기업의 광고로 도배를 했다. TCL(TV), 하이얼(생활가전), 화웨이(노트북), 아너(스마트폰), 어메이즈핏(웨어러블 기기) 같은 중국 주요 업체들은 기존 주력 제품보다 3~4배 비싼 프리미엄 신제품을 일제히 공개했다. 미국의 대중 견제 속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유럽의 프리미엄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강화하면서 시장 확대에 나선 것이다.
◇삼성·LG 텃밭 ‘프리미엄’ 공략 나선 中
중국 생활 가전 1위 하이얼은 초고가 브랜드 ‘카사르테(Casarte)’를 이번 IFA에서 유럽 시장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중국 부자들이 애용하는 이 브랜드의 냉장고는 우리 돈으로 약 1000만~2000만원대로, LG전자의 초고가 시그니처 가전 라인과 가격대가 같다. 황청 하이얼 스마트홈 총괄은 “하이얼이 인수한 미국 ‘후버’와 이탈리아 ‘캔디’는 중저가 시장을 맡고, 하이얼은 프리미엄 시장에 주력할 것”이라며 “하이얼은 2020년부터 유럽 시장에서 매년 100% 이상씩 성장하고 있고 IFA 전시관도 2015년 처음 IFA에 참가했을 때보다 6배 커졌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브랜드 ‘노바 프로’를 처음 공개했고, 애플 맥북과 가격이 비슷한 300만원짜리 고가 노트북도 선보였다. 톈웨이 화웨이 소비자 부문 유럽총괄 사장은 본지에 “(미국의 제재로 인한) 위기는 오히려 화웨이를 강하게 만들었다”며 “프리미엄 시장 공략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화웨이에서 분사한 스마트폰 회사 아너(HONOR)도 IFA에 처음으로 부스를 열었다. 올 초 중국 시장에 첫 폴더블폰 ‘매직V’를 선보인 아너는 내년 초 글로벌 폴더블폰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3일 밝혔다. 니클라스 매슨 아너 홍보실장은 “지난 5월 아너가 유럽에 출시한 1100유로(약 150만원)짜리 고가 스마트폰은 출시 첫날 준비된 물량이 동났다”고 했다.
세계 5위 스마트워치 업체인 중국 어메이즈핏도 이번 행사에서 역대 최고가인 229유로(약 41만원)짜리 스마트워치를 최초 공개했다.
◇”中 기업들, 美 견제 속 유럽서 시장 확대”
유럽과 한국 업체들이 주도해온 유럽 가전 시장을 겨냥한 중국 기업들의 공세는 유럽 현지 가전 매장 풍경도 바꾸고 있었다. 3일 독일 베를린 중심가 알렉산더 광장에 위치한 가전 양판점 ‘미디어마크트 알렉사’에 들어서자, 하이얼·하이센스·화웨이·오포 등 중국 브랜드가 시선을 압도했다. 매장 입구엔 하이센스의 600만원대 프리미엄 TV가 손님을 맞았고, 애플 매장 옆에는 화웨이 매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독일 현지 관계자는 “독립 매장 39곳 가운데 중국 기업은 7곳이고, 한국은 삼성·LG 둘뿐”이라며 “유럽 소비자들은 자국 제품 외엔 국적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가성비와 무난한 기술력을 갖춘 중국 기업이 기회를 얻고 있다”고 했다.
LG전자의 TV 상품 기획을 담당하는 백선필 상무는 “중국 TCL과 하이센스의 LCD TV는 한국의 90%까지 따라온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최상위급 제품이 아닌 일반 고화질 TV는 사실상 동등한 수준”이라고 했다. 백 상무는 “이미 하드웨어 분야에선 다 따라왔기 때문에, 격차를 지키기 위해선 고객 사용자 경험에서 차이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베를린(독일)=이벌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