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은 지난 1일 ‘메이플스토리 월드’ 국내 시범 서비스를 열었다.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서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할 수 있다. 컴투스는 지난달 25일 자사 메타버스 전문 기업 컴투버스와 KT, SK네트웍스, 하나금융그룹이 손잡고 메타버스 구축에 나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가상공간 속 토지 분양을 시작하고, 기업 대상으로 사무·전시·회의 공간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개인과 소상공인을 위한 서비스도 2024년 출시 예정이다. 크래프톤도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생산해 돈을 벌 수 있는 메타버스 ‘미글루’를 개발하고 있다. 넷마블은 가상자산으로 메타버스 속 부지를 매입해 건물을 올리고 부동산을 거래하는 방식의 투자 게임 ‘모두의 마블: 메타월드’를 준비 중이다.
메타버스에 열기가 식었는데도 게임사는 물론 통신사, 콘텐츠 제작사까지 메타버스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엔 IT(정보기술)기업 뿐만 아니라 학교,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까지도 메타버스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제대로된 성과를 낸 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지자체에서 내놓은 메타버스 여행 콘텐츠는 방문객이 한명에 그쳤을 정도였으며 대기업이 만든 메타버스 플랫폼이 1년 동안 이렇다할 실적도 못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은 것은 앞으로(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지금처럼 시장의 관심이 사그라들었을 때가 메타버스계(界)의 옥석을 가리는 시간이다”라며 “아직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플랫폼이 없어서 도전해볼 만하다”라고 했다.
◇통신사·엔터사도 메타버스 뛰어들어
최근에는 메타버스의 적임자라고 여겨지던 게임사 외에 통신사나 콘텐츠·엔터테인먼트 회사도 메타버스 사업에 적극적이다. SK텔레콤은 자사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 ‘이프랜드 포인트’를 도입한다고 5일 밝혔다. 이프랜드 사용자는 이프랜드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고, 적립한 포인트로 이프랜드 모임을 운영하는 사용자인 ‘호스트’에게 자신의 포인트를 후원할 수 있다. 호스트는 모임을 운영하며 받은 후원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방송의 인플루언서가 팬들의 후원을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사용자들이 아바타의 옷과 장신구를 직접 제작하고 거래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LG유플러스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메타버스 서비스 ‘U+가상오피스’와 영유아를 겨냥한 ‘U+키즈동물원’의 베타 버전을 올해 말까지 내놓고 내년부터 상용화에 들어갈 예정이다. U+키즈동물원은 LG유플러스의 강점으로 꼽히던 어린이 콘텐츠를 메타버스 서비스에 접목한 것이다. 30여 종의 야생동물과 20여 종의 공룡 등 이미 멸종된 생물을 가상 세계에서 구현해 유아들이 체험해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선보인다.
콘텐츠·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지식재산권(IP)를 내세워 메타버스에 접근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메타버스 플랫폼 ‘컬러버스’ 안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케이팝을 테마로 한 메타버스 월드나 주요 스토리 IP를 이용한 가상공간 서비스를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내놓은 소개 영상에는 라이언·어피치와 같은 카카오의 대표 캐릭터들이 컬러버스 안의 가상 카카오뱅크를 이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하이브도 지난 4월 메타버스와 게임 개발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소속 아티스트들의 IP를 활용한 메타버스 콘텐츠 개발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사용자가 수익 얻는 구조로 진화
메타버스란 단어는 초월⋅변화를 뜻하는 접두사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것이다. 1992년 나온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등장했다. 피자 배달부인 주인공이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에서 아바타로 활동하는 얘기다. 메타버스의 개념에 대해선 아직 학계나 업계에서 일치를 본 것은 아니다. “온라인 게임의 확장판 정도일 뿐”이라고 낮잡아 보는 입장부터 “현실세계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라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까지, 메타버스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양하다. 대부분은 현실세계와 비슷한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 학계 정의나 업계 기준이 명확하진 않지만 최근 다양한 기업에서 메타버스 사업을 시작하면서 점점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중개·관리 스타트업 직방은 지난해 7월부터 자체 제작한 가상 사옥 ‘메타폴리스’에서 관계사 포함, 600여 직원의 아바타가 일하고록 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이프랜드나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월드, 크래프톤의 미글루처럼 사용자나 창작자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메타버스만 들어가면 잘 팔리는 시대는 갔다
지난해엔 메타버스란 단어만 들어가면 뭐든 잘 팔렸다.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며 사명을 ‘메타’로 바꿨을 때 메타버스의 위상은 정점에 달했다. 지난해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게임업체 로블록스는 메타버스의 대표 우량주로 꼽히며 지난 연말까지 주가가 50% 가까이 뛰었다. 엔데믹이 다가오고, 금리 인상으로 기업 투자가 줄어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로블록스와 메타의 주가는 올해 들어선 최고점 대비 50% 이상 하락했다. 국내에서도 메타버스 관련주로 꼽히던 위메이드, 위지익스튜디오 주가나 메타버스 ETF의 수익률은 최고가를 기록한 지난해 말에 비해 최근 최소 30%에서 최대 70%까지 떨어졌다. 메타버스 열기가 차갑게 식은 것은 거리 두기 완화 이후 비대면이 필요한 상황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메타버스 상용화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기술이 제대로 구현되고 일상화가 되기까지 걸리는 돈과 시간이 문제다. 지난해 초 한 IT기업은 실물 사옥을 본뜬 건물을 메타버스에 짓고 여기서 신입 사원 입문 교육(OT)을 하려고 했는데 예산 부족으로 실제 건물의 10분의 1정도만 지었다. 이 기업 관계자는 “현실 세계를 메타버스에 정교하게 옮기기 위해선 예상보다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메타버스를 전 세대가 받아들이기까지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올해 상반기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14세 이상 휴대폰 이용자 3797명에게 메타버스 인지도와 이용경험을 물은 결과 메타버스 플랫폼을 실제로 이용해 본 사람은 전체 응답자 10%에 그쳤다. 전세계 이용자 3억명을 확보한 네이버제트의 메타버스 ‘제페토’의 이용자 중 10대 비중이 80%에 달할 정도다. 또 메타버스를 실감나게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XR기술도 아직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지 않았다. 2020년 메타(페이스북)가 XR(확장현실) 헤드셋 기기인 ‘오큘러스 퀘스트2′를 내놨지만 팬데믹 기간 중에도 1년간 1000만대 팔린 데 그쳤다.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애플, 메타, 구글의 새로운 XR 헤드셋 기기들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