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장에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이 상품이 전 세계에 통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지난 13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팰로앨토에서 만난 클라우스 베헤게(Klaus Wehage) 10X이노베이션 랩 CEO(최고경영자)는 스타트업의 글로벌 성공 전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계 각국 시장은 그마다 문화적, 사회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한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제품과 서비스를 그대로 다른 시장에 론칭하다간 실패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철저한 현지화가 글로벌화의 기본 조건이라고 했다.
덴마크 출신인 클라우스 베헤게는 미 실리콘밸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컨설턴트이자 어드바이저, 창업가, 작가다. 그는 스타트업 육성기관인 10X 이노베이션 랩을 세우고, 스타트업의 생존·성장 전략을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실리콘밸리의 비결을 알고 싶어하는 기업가와 창업가, 정부 요인들이 앞다퉈 그를 찾아, 그에겐 ‘실리콘밸리 대사(엠배서더)’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최근엔 콜롬비아 산업 생태계 확대를 고민하는 콜롬비아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고 했다.
최근 그가 관심을 쏟는 분야는 스타트업의 글로벌화 전략이다. 지난달 그는 10X 이노베이션 랩 공동 창업자인 아론 맥대니엘과 함께 ‘글로벌 클래스’라는 책을 출간했다. 60개국 250개 기업의 임원 400여명을 인터뷰해 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을 분석한 책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들은 현지화에 집중하며 어떻게 글로벌화를 이룩했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월스트리트저널 선정 2주 연속 베스트셀러 톱10에 선정됐다. 그는 “사업의 세계화는 외로운 여정”이라며 “스타트업들이 세계화를 추진하며 범하는 오류를 줄이는 도구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했다.
◇서비스 이름부터 직원까지 모두 현지화
그는 세계화 성공의 비결로 첫번째, 철저한 현지화를 언급했다. 그는 “모두가 현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무엇이 제대로 된 현지화인지 모른다”며 “대부분이 현지화를 기존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맞게 매니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화를 추진하면서 현지 시장의 고객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현지 시장과 문화를 완벽히 이해하고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링크드인을 예로 들었다. 링크드인은 인도에 진출하면서 기존 이미지 중심이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완전히 바꿨다. 인도 대부분 지역의 통신망이 아직 2G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그래픽과 이미지가 들어가면 로딩 시간이 길어진다. 링크드인은 이 점을 파악해 인도에선 텍스트 기반 모델인 링크드인 라이트를 출시했다. 그는 “첫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을 다른 시장에 내놓으며 ‘내가 내놓은 것이 편리하니 사용자들이 저절로 알아봐 줄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서비스 이름부터, 구성, 직원들까지 모두 현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글로벌화의 첫 단계
그는 무엇보다 진출하는 해당 국가의 문화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메신저 슬랙과 전자서명 서비스 도큐사인의 일본 진출 성공기를 이야기했다. 일본 시장 진출 전 슬랙은 메신저 창에 글자를 치고 키보드의 엔터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에게 입력한 글자가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일본 소비자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일본인들은 단문으로 정보가 짤막짤막 들어가 있는 여러 개의 문장보다는 모든 정보가 꽉 들어찬 완성된 문장을 보내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를 파악한 슬랙은 메신저 입력창 옆에 종이비행기 모양의 ‘보내기(Send)’ 버튼을 만들었고, 일본에서는 이 버튼을 눌러야만 메시지가 전송되게 했다.
도큐사인의 일본 진출도 비슷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일본은 아직도 손으로 쓴 서명보다는 실물 도장을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당연히 일본 소비자들은 손으로 사인하는 전자서명 서비스인 도큐사인을 꺼렸다. 도큐사인은 이를 일본 도장 브랜드인 사치하타와 손잡고 ‘전자 도장’을 만들었다. 손으로 쓰는 서명 대신 전자 도장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베헤게는 “회사 방식(컴퍼니 웨이)이 아닌 현지 방식(로컬 웨이)을 철저히 지켜 도큐사인은 일본에 정착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현재 일본은 도큐사인의 해외 최대 시장이다.
미 오프라인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독일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독일 진출에 실패한 경우다. 월마트는 독일에서 개장한 매장문 앞에 직원들이 서서 방문객들에게 큰소리로 인사하도록 했다. 또 프로모션을 위해 공짜 고기도 줬다. 하지만 독일 소비자들은 월마트 직원들의 갑작스러운 인사에 깜짝 놀라고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불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또 육류는 정육점에서 사야 된다고 생각하는 독일 소비자들은 월마트의 무료 제공 고기에 미심쩍어했다고 베헤게는 전했다.
◇“본사가 모든 것을 콘트롤 하려고 하지 마라”
그는 글로벌화에 성공하려면 본사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각 국가에 법인을 내고 본사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을 공략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아예 다른 지역에 들어가 완벽히 현지 회사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헤게는 “한국은 아직 본사가 많은 것을 콘트롤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며 “본사는 콘트롤타워가 아니라 서포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사가 아닌 현지 사무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글로벌 기준에서 한국 시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도 했다. 많은 기업이 아시아 진출을 염두에 두며 가장 먼저 한국 시장을 노크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K팝, K드라마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다른 국가에도 빠르게 전파되는 상황이다. 베헤게는 “한국 시장은 결코 작지 않다. 중국과 아시아에 영향을 주는 시장”이라며 “결코 한국을 스스로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했다.
‘실리콘밸리 대사’로도 불리는 그에게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었다. 그는 “실리콘밸리는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복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기존 가진 산업 경쟁력과 생태계 위에서 혁신에 집중하면 된다”고 했다. 예컨대 하드웨어가 강한 한국은 하드웨어 위에 소프트웨어를 확대하는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교육을 통한 글로벌 마인드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싱가포르, 이스라엘 테크 기업들이 강점을 보이는 것은 어릴 적부터 해외를 경험하며 쌓은 글로벌 이해가 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에는 글로벌 마인드에 대해 교육하는 버클리와 스탠퍼드 대학이 있다”며 “다양한 문화권의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글로벌 마인드를 교육하고 이를 이해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