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미국 실리콘밸리 기반 패션 중고 거래 플랫폼 ‘포쉬마크’를 16억달러(약 2조3441억원)에 인수한다고 4일 밝혔다. 이는 네이버는 물론 국내 인터넷·포털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 딜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네이버 주가가 연일 신저가를 기록하고, 실적 전망이 불투명한 와중에도 중고 거래를 통한 미국 시장 진출에 통 큰 베팅을 한 것이다. 이날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개인 간 거래 시장은 IT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라며 “글로벌 IT의 본진인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오전 인수합병 소식이 발표되자, 네이버 주가는 8.79% 하락한 17만6500원을 기록했다.
◇ ‘포쉬마크’ 2.3조에 인수, 국내 인터넷·포털 사상 최대 M&A… 네이버 창사 이래 최대 인수합병
네이버가 이번에 인수한 포쉬마크는 미국의 대표적인 중고 거래 플랫폼이다. 2011년 설립 이후 8000만명 이상 이용자를 확보했으며, 특히 개인 간 거래 분야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판 ‘당근마켓’이다.
네이버는 포쉬마크의 화제성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지역 기반 중고 거래라는 측면에서는 당근마켓과 비슷하지만, 대부분 MZ세대인 젊은 이용자들이 패션·뷰티 인플루언서들을 팔로하면서 그들이 입고 있는 제품을 따라 구매하는 비중이 높은 서비스라는 설명이다. 최수연 대표는 “포쉬마크는 당근마켓보다는 인스타그램과 비슷한 쇼핑몰”이라며 “쇼핑보다 소셜미디어 기능을 더 중요하게 봤다”고 했다. 현재 포쉬마크 이용자들은 매일 25분가량을 체류하는데, 이는 네이버웹툰과 비슷한 수준이다. 네이버는 커머스를 통한 수수료 매출뿐 아니라 이용자 기반 맞춤형 광고로도 수익을 내겠다는 계산이다.
이번 인수와 관련, 네이버가 국내 이커머스 1위 자리를 두고 쿠팡과 엎치락뒤치락 하는 상황에서, 이익이 많이 남는 ‘버티컬(특정 분야 특화) 커머스’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이번 포쉬마크 인수를 결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네이버는 중고 거래와 미디어 커머스 등 버티컬 커머스 영역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네이버는 올해 국내 네이버쇼핑 거래액 중 버티컬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렸다.
이번 인수로 네이버는 ‘글로벌 중고 거래 벨트’를 완성했다. 한국(크림)·일본(빈티지시티)·유럽(왈라팝, 베스티에르)·미국(포쉬마크)을 연계해 글로벌 사업 규모를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네이버는 자사 메타버스(제페토), 웹툰 등 커뮤니티 기반 서비스를 포쉬마크와 결합해 북미 MZ세대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최 대표는 “제페토, 웹툰 등과 재미있게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싼 인수가’ 우려에 주가는 급락
한편 시장에서는 이번 인수 건에 대해 우려의 반응도 나오고 있다. 미국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 위기 속에 네이버가 2조원 넘는 현금이 투입되는 대형 인수합병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또한 포쉬마크가 올해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여기에 이날 오전 미국 시티글로벌마켓증권이 보고서를 통해 “구글과 메타에 비해 고평가됐다”면서 네이버 목표 주가를 17만원으로 기존보다 48% 하향 조정하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최수연 대표는 이날 오후 열린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주가 급락에 대해 “통상 대형 인수합병을 하면 인수 기업의 주가가 약세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남선 최고재무책임자(CFO)도 “네이버는 주가 방어적 관점에서 투자하거나 사업을 하지 않는다”며 “거시적 상황과 상관없이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포쉬마크 인수가가 높다는 지적에 대해서 “포쉬마크 매출의 5분의 1 수준의 회사(디팝)도 지난해 2조3000억원에 매각됐다”며 “이번 인수는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해외 평가도 나온다”고 반박했다. 미국 CNN은 이번 인수 건에 대해 “패션 중고 거래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라며 “2026년까지 2190억달러(약 312조2940억원)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