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올 초 냉장고 문(門)이 17만여 종의 색상 조합으로 변하는 ‘디오스 오브제컬렉션 무드업 냉장고’를 개발하다가 전기료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사용자가 냉장고 근처로 다가가면 조명이 들어오기 때문에 고객들이 전기료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겠느냐’는 것. LG는 고객 1만3000여 명의 냉장고 사용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에 착수했다. 그 결과 여름철을 기준으로 고객들은 냉장고 문을 하루 평균 19.4회, 많게는 41.3회 열고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 관계자는 “이 중 최대치를 기준으로 문의 조명이 하루 11시간 켜있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니, 한 달 전기료가 2700원 정도 추가되는 수준이라 출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세계 1위 가전 기업인 LG전자가 ‘데이터 기업’으로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보통 TV, 냉장고, 세탁기 같은 하드웨어(hardware) 전문 업체로 생각하지만, 이제 그보다는 전 세계에 깔아둔 기기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여기서 수익을 이끌어내는 ‘제2의 사업 모델’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은 제품을 한번 팔면 끝이었지만, 이젠 계속 고객과 소통하면서 데이터를 쌓고 여기서 수익을 만드는 모델로 가고 있다”며 “이제 회사명에서 ‘전자’라는 이름을 떼는 것도 생각해 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데이터가 제품 출시 좌우
LG전자는 최근 가전 제어 앱인 ‘싱큐(ThinQ)’를 통해 소비자들의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고 있다. 이 데이터는 LG의 각종 제품·서비스 출시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LG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중 최소 크기인 42인치 모델도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출시했다. LG가 48인치 OLED TV 구매자를 분석해봤더니, 무려 70%의 고객이 게임기를 연결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TV를 볼 목적이 아니라 게임용 고화질 스크린으로 샀다는 뜻이다. 고객 설문을 해보니 “책상에 올려놓고 게임을 하기엔 좀 크다”는 반응이 많아, 이보다 작은 42인치 TV가 탄생하게 됐다.
LG전자가 지난 4월 ‘종료 후 세탁물 케어’라는 기능을 내놓을 때도, 고객들의 세탁기 사용 데이터 20만여 건이 밑바탕이 됐다. 분석해보니 “세탁이 종료된 후 1시간이 넘도록 세탁물을 꺼내지 않은 사람이 25%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LG는 빨래가 끝난 뒤 세탁 통을 주기적으로 회전시키고 필요하면 추가 세탁까지 해, 세탁물이 꿉꿉해지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개발했다.
LG는 이런 데이터가 있으면 소비자들을 붙잡는 ‘록인(lock-in) 효과’도 한층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소비자가 매장에 와서 ‘65인치 TV 달라’ ‘23㎏짜리 세탁기 달라’가 아닌, 매장 직원이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동안 제품 사용 이력을 보니 이런 제품의, 이런 기능이 어울리실 것 같다’며 맞춤형 추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데이터 기반 맞춤형 광고를, 제2의 캐시카우로”
LG전자는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전에 이은 제2의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 중심은 TV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TV는 일종의 ‘거대한 광고판’”이라며 “현재 전 세계에 1억5000만대의 스마트 TV가 깔려있는데, 여기엔 자동으로 콘텐츠 내용을 인식하는 기술이 탑재돼 있어 고객이 어디에 관심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즉 ‘고객의 TV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콘텐츠나 광고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콘텐츠나 광고 수익이 기기 판매의 수익을 넘어서는 ‘골든크로스’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LG전자가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처럼, 스마트 TV의 운영체제인 ‘웹OS’를 자체 개발하고 적용 브랜드를 작년 20여 곳에서 올해 200여 곳으로 공격적으로 늘린 배경에도 이 같은 계산이 깔려있다. LG전자 관계자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광고 사업이 가전의 뒤를 잇는 제2의 캐시카우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