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력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TV·가전, 스마트폰이 복합 위기에 빠졌다. 특히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은 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확정으로, 미·중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수요 침체와 가격 하락의 ‘반도체 겨울’을 맞은 상황에서 정치적 변수까지 커진 것이다.
한국이 1위인 세계 TV, 스마트폰 시장 역시 혹독한 ‘수요 한파’를 맞고 있다. 올해 세계 TV 출하량은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할 전망이고, 올 3분기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8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전방 산업인 TV의 부진과 중국 기업들의 저가 물량 공세로 LCD(액정표시장치) 중심의 디스플레이 산업은 적자의 늪에 빠졌다. 이달 말 나란히 발표하는 이들 분야 국내 주요 기업들의 3분기 실적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시진핑 3연임’ 속 불확실성 커진 반도체
26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부진’ 여파로 영업이익이 1조7000억원 안팎에 그칠 것으로 증권가는 전망한다.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급락한 수치로, 4분기엔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반도체 부진 탓에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3분기보다 30% 이상 하락했다는 잠정 실적을 내놓은 삼성전자도 27일 부문별 실적을 포함한 최종 실적을 발표한다.
글로벌 경쟁사들과 비교한 경쟁력과 수익성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4일 “글로벌 시가총액 100대 반도체 기업 중 한국 기업은 3곳(삼성전자·SK하이닉스·SK스퀘어)뿐이고, 시총 순위와 수익성은 최근 뒷걸음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1위였지만, 올 10월에는 대만 TSMC와 미국 엔비디아에 밀려 3위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총 100대 반도체 기업 가운데 중국은 42개사로, ‘칩4′로 불리는 한국·미국·대만·일본의 48개사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 중 한국 기업은 단 3곳으로 미국(28개), 대만(10개), 일본(7개) 대비 크게 뒤처졌다. 한국 기업들은 순이익률(매출액 대비 순이익)도 최근 3년 새(2018~2021년) 1.9%포인트 감소하며, 칩4 가운데 유일하게 하락세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은 우리 반도체 업계로선 악재라는 분석이다. 그간 미국보다 중국에 투자를 집중해온 한국 반도체 업계로선 미·중 갈등이 더 격화되면서 타격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24일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2020년까지 삼성전자가 미국에 투자한 금액은 38억달러로 중국 투자 규모(170억6000만달러)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미국에 공장이 없는 SK하이닉스는 중국에만 249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TV·가전,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도 침체
‘코로나 특수’로 호황을 맞았던 TV·가전,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산업도 급격한 수요 침체에 직면했다. 오는 28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LG전자는 지난 2분기 TV 사업에서 7년 만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엔 적자 폭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도 TV·가전 부문의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하락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TV 시장 출하량이 10년 만의 최저를 기록하고, 내년엔 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TV 부진은 TV용 대형 패널을 주로 공급하는 디스플레이 실적에도 악영향을 줄 전망이다. 증권가에선 LG디스플레이가 올 3분기 6000억원대 적자에 이어 4분기도 적자를 내며 올해만 1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 3분기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8년 만에 가장 저조했으며, 올해 4분기와 내년 상반기에도 개선 조짐이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