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미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이들이 추진하던 ‘문샷 프로젝트(미래 혁신 기술 연구)’가 사라지고 있다.

자료=각사·업계

그동안 빅테크들은 주력 사업 외에도 자율주행차, 자율 주행 배달 로봇, 하늘을 나는 택시, 차세대 IT 기기 등 다양한 미래 혁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해왔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당장 실생활에 적용하기는 어려워 인류가 달 정복을 꿈꿨던 것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문샷(Moonshot)’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경기가 급속히 악화하자 빅테크들이 실현 가능성과 수익성이 낮을 것으로 보이는 프로젝트를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테크 업계가 사업의 산만함을 제거하고 있다”며 “화려하고 번쩍이는 기술에서 유용한 기술로 무게 추를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정리되는 혁신 기술

문샷을 가장 광범위하게 정리하는 곳은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지난달 초 차세대 기술 연구 부서인 그랜드챌린지에서 진행하던 증강현실(AR) 헤드셋, 대기 중 물을 생성하는 기기, 이산화탄소를 제트 연료로 전환하는 기술 등 비밀 프로젝트 3가지를 중단했다. 또 코로나 기간인 2020년 말 출시한 가상 여행 경험 서비스인 ‘아마존 익스플로어’도 10월 31일을 기점으로 접었다. 어린이용 화상 통화 장치인 글로 출시도 1년 만에 중단했고, 2019년부터 테스트하던 자율 주행 배송 로봇인 스카우트 개발도 보류했다.

아마존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 늘렸던 물류 창고 숫자도 줄이며 사업 군살 빼기를 진행 중이다. 인사이더는 “AR 헤드셋의 경우 사용 후 어지럼증과 같은 부작용이 발견됐고, 대기 중 습기에서 식수를 만드는 프로젝트는 명확한 사업 모델이 없어 정리 수순을 밟게 됐다”고 했다.

구글도 지난 9월 사내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에어리어120′에 대한 자금 지원을 대폭 삭감하고, 여기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14개 중 절반인 7개를 중단했다. 에어리어120은 구글 직원 중 창업을 원하는 사람이 별도의 작업 공간에서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직이다. 구글은 또 지난 10월엔 자사 클라우드(가상 서버) 게임 서비스인 ‘스타디아’도 종료한다고 밝혔다. 클라우드 게이밍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자사 서비스의 경쟁력이 약하다고 판단되자 과감하게 사업을 포기한 것이다.

SNS(소셜미디어) 기업 스냅은 지난 8월 소형 셀프 촬영 드론인 ‘픽시’ 사업을 접었다. 올 4월 처음으로 공개한 제품인데 판매가 저조하자 4개월 만에 중단했다. 에번 스피걸 스냅 CEO(최고경영자)는 “회사가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타(옛 페이스북)도 올 6월 카메라가 앞뒤로 2개 달린 스마트워치를 개발하다 중단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올 2월 ‘칼립소’라고 부르던 가상현실(VR) 기기 홀로렌즈 3세대 제품 개발을 보류했다.

◇실용주의로 전환하는 빅테크들

빅테크들이 문샷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것은 그만큼 빅테크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올 3분기 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아마존 등 빅테크들은 순이익이 1년 전보다 9~52% 감소했다. 테크 기업들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상황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회사를 단순화하고 확장에 따른 복잡성을 관리해야 한다”고 했고, 앤디 재시 아마존 CEO는 “보다 능률적으로 투자의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테크 업계에선 빅테크들이 실용주의로 전환하고 있다고 본다. 야심차지만 허무맹랑한 기술은 정리되고 실제 돈벌이가 될만한 기술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동안 테크 기업들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라는 태도였다면 이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로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이 미래 기술 개발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업체들은 핵심 기술 분야를 1~2개로 좁히고 집중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구글은 AI(인공지능)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고, 메타는 메타버스에 ‘올인’ 중이다. 아마존도 헬스케어를 신사업으로 점찍고 불임 생식력 모니터링 장치와 항생제 내성 예방 치료법 같은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