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거래소 FTX가 11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AFP연합뉴스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로 꼽혔던 FTX가 유동성 위기 끝에 11일(현지시각) 파산하고, 창업자이자 CEO(최고경영자)였던 샘 뱅크먼프리드가 물러난다. FTX는 이날 “미국 델라웨어주의 한 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 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파산법상 파산 보호 신청인 챕터11은 파산법원 감독 하에 구조조정 절차를 진행하는 한국의 기업회생절차와 유사한 제도다.

FTX는 본사격인 FTX와 미국 지사(FTX US),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계열사 알라메다 리서치 등 130여개 계열사도 모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130여개 자회사의 부채는 최소 100억달러(14조원)에서 많게는 500억달러(70조원)까지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FTX의 파산은 올해 미국에서 벌어진 가장 큰 파산이며, 역대 가상화폐 업계 최대 규모 파산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FTX의 창업자인 샘 뱅크먼프리드는 이날부로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존 J. 레이 3세가 회사 대표로 FTX의 파산 절차를 이끈다. 존 J. 레이 3세는 구조조정, 파산 전문경영인으로 2007년 파산한 미국의 천연가스 기업 엔론의 파산 절차 때도 회사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샘 뱅크먼프리드는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에 죄송하다”며 “상황이 회복될 방법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이번 사태는 전 세계 가상화폐 투자자를 비롯해 가상화폐 관련 기업, 또 가상화폐 산업에 투자한 다른 기업들에도 연쇄적으로 충격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FTX는 파산보호 신청서에 회사의 관련 채권자가 약 10만명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FTX에서 가상화폐를 거래했던 투자자로, 현재 FTX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출금을 막고 있다. 단, 가상화폐는 한국과 미국 어느 곳에도 은행 예금처럼 최소한의 예금자 보호 장치가 없기 때문에, FTX가 파산하면 이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거나 적은 금액을 보상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FTX 파산으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기업들도 있다. 이날 FTX의 파산 소식이 전해지고 로빈후드, 마이크로스트레지, 갤럭시 디지털 등 기업들은 주가가 모두 15% 이상 하락했다. 주식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의 개인 최대 주주는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고, 마이크로 스트레지와 갤럭시 디지털은 회사 차원에서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회사다. FTX에 투자했던 세쿼이아 캐피탈, 소프트뱅크 등 투자회사들도 각각 1000억원 이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비트코인(7%)을 비롯해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들은 10% 이상 하락했다.

FTX는 약 10일 만에 몰락했다. 발단은 미국의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가 지난 2일 FTX의 계열사 알라메다 리서치의 재무제표를 입수, 알라메다의 자산 대부분이 FTX가 발행한 코인 ‘FTX 토큰(이하 FTT)’으로 채워져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FTX가 계열사와 내부 거래를 통해 코인 유통량을 늘리고, 알라메다는 코인을 담보로 다른 투자 사업을 했다는 것으로 내부 거래를 통한 몸집 불리기를 했다는 것이다.

곧이어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CEO는 “FTX가 발행한 코인 FTT를 전량 매각하겠다”며 투자자들의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바이낸스는 약 7000억원어치로 추정되는 FTT를 시장에 던졌고, FTT 가격은 일주일 사이 84% 이상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거래소 도산을 우려해 FTX에 예치했던 가상화폐와 현금을 무더기 인출하기 시작했다. 업계에 “제2의 루나 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까지 감돌면서 연쇄 작용으로 뱅크런 속도는 더 빨라졌다. 설상가상으로 FTX를 인수하겠다던 바이낸스가 인수를 철회하면서 FTX는 회생 자체가 어려워지게 됐다.

블룸버그는 “현재까지 이번 사태로 증발한 기업들의 시가총액만 약 50억 달러(약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가상화폐 산업의 근간과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