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세계 3대 가상 화폐 거래소 FTX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 지 10일 만에 몰락했다. FTX는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파산보호란 파산법원 감독하에 회생 절차를 밟는 것으로 한국의 법정관리와 유사한 제도다. FTX는 이번에 130여 개 계열사도 모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부채 규모는 최대 500억달러(약 66조2000억원), 채권자는 10만명에 달한다. 가상 화폐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다.

FTX에 거액을 투자한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은 수천억원대 손실이 불가피하고 개인 투자자들도 역시 한 푼도 건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상 화폐와 가상 화폐 거래소는 일반 금융기관과 달리 파산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FTX 이용자도 1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사태를 촉발한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CEO(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났다.

◇대혼란 중인 FTX와 재평가되는 뱅크먼프리드

가상 화폐 업계의 ‘수퍼스타’로 불리던 서른 살 억만장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완전히 몰락했다. 미 매사추세츠 공대(MIT)를 나와 2019년 FTX를 창업한 뱅크먼프리드는 FTX 기업 가치가 320억달러(약 42조2000억원)가 되면서 한때 자산이 156억달러(약 20조6000억원)에 달했다.

뱅크먼프리드는 항상 공식 행사에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나타나며 ‘쿨한 트레이더’ 이미지를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외모로 자신을 브랜드화하면서 큰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고 했다. FTX는 설립 2년 만에 일본 소프트뱅크, 미국 타이거글로벌 같은 유명 투자 업체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고 그에게는 ‘코인계의 워런 버핏’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가 명성과 달리, 본업보다는 딴짓을 많이 했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는 NFL(미 프로풋볼) 수퍼볼 광고를 하고 NBA 구장 이름을 사들이며 한눈팔기에 바빴다. 내실 있는 성장보다는 미 워싱턴 정가에 대규모 로비를 하며 거액을 뿌렸다. 외신들은 “뱅크먼프리드가 직원 회의 중에 컴퓨터 게임을 하고, 투자사에 내놓은 사업 소개 자료도 엉망이었다”고 했다. 트위터 인수를 위한 투자금을 유치하며 뱅크먼프리드와 대화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그에 대해 “그는 트위터에 30억달러를 투자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며 “헛소리를 하던 녀석”이라고 꼬집었다.

FTX가 고객 자금을 부적절하게 운용하고 대규모 해킹을 당해 자금이 유출된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FTX가 부채 상환 요구에 시달리던 계열사 알라메다에 자사 고객 돈 100억달러를 빌려줬다”고 보도했고, 로이터는 “이 과정에서 10억~20억달러의 고객 자금이 사라졌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12일(현지 시각)에는 FTX 거래 플랫폼에서 6억6200만달러(약 8700억원)어치 가상 화폐가 유출됐는데, 현지에서는 “해킹을 당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개인 투자자들 피해 클 듯

FTX 파산신청에 따른 충격파는 글로벌 투자 업계를 뒤흔들 전망이다. 가상 화폐는 파산법에 따라 보호받지 않고, 개인 투자자는 채권자로서 우선순위가 낮아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 현재 FTX에 예치한 가상 화폐와 현금은 인출이 불가능한 상태다. 1만명에 달하는 국내 투자자들도 큰 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교직원연금,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일본 소프트뱅크, 미국 헤지펀드 타이거 글로벌 등도 각각 수천억원의 돈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실리콘밸리 유명 VC인 세쿼이아는 FTX에 투자한 2억1400만달러를 전액 손실 처리했고,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약 1억달러의 손실을 볼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가상 화폐 장외거래·담보대출 서비스 업체인 제네시스트레이딩은 1억7500만달러가 FTX에 묶여 있다고 했고, NFL 스타 톰 브래디와 그의 전 아내 지젤 번천은 광고에 출연하고 FTX 지분을 받았는데 이것도 휴지 조각이 됐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FTX 사태는 금융상 오류가 아니라 사기 냄새가 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