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년 뒤면 테크 산업과 나머지 산업의 경계가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55) 최고경영자(CEO)는 15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에서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팬데믹 2년간 팽배했던 테크 낙관주의는 끝난 것이냐’는 질문에 “지금 에너지, 의료 분야가 떠오르고 있지만 에너지 기업은 에너지 전환에, 의료 기업은 인공지능(AI)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 산업도) 테크가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델라 CEO는 인터뷰에 앞서 열린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 대회 ‘이그나이트 코리아’에 참석해 “역풍이 거세지는 지금은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생산성을 내야 하는 시기”라며 “디지털 전환이 바로 답”이라고 했다.
◇MS 중흥 이끄는 인도계 CEO 국내 언론과 최초 인터뷰
인도 출신인 나델라 CEO는 ‘영혼을 잃어가던 회사’로 불리던 MS를 다시 일으킨 인물이다. 1992년 MS에 입사해 핵심 부서인 컴퓨터 운영체제 ‘윈도’ 사업부 대신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같은 비핵심 사업을 맡아왔다. 하지만 MS 이사회는 2014년 나델라를 CEO로 깜짝 발탁했다. 그는 취임 직후 스마트폰, 검색엔진, 소셜미디어 분야에서 연이어 실패하며 위기에 처한 MS를 클라우드 중심 기업으로 재편했다. 스마트폰·검색엔진·운영체제 분야에서 경쟁하던 애플·구글·리눅스와도 기꺼이 손을 잡았다. 그가 취임한 지 4년 만에 주가는 3배 이상 올랐고, 2021년 10월에는 애플을 제치고 미 증시 시가총액 1위를 탈환하기도 했다. 매출도 2014년 871억달러(약 114조1400억원)에서 올해(회계연도 기준) 1982억달러가 돼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나델라 CEO는 MS의 미래 핵심 기술로 AI·혼합현실·양자컴퓨터를 꼽았다. 그는 “이 세 가지 기술도 결국 클라우드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앞선 기조연설에서도 MS의 클라우드인 ‘애저’ 위에서 돌아가는 AI 화가 ‘달리’를 소개했다. 나델라 CEO는 “여기 오는 길에 달리에게 ‘미래 서울의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더니 순식간에 훌륭한 그림을 그려냈다”며 “클라우드의 혁신이 AI 혁신이며, 양자컴퓨터의 기초 단계”라고 했다.
◇“한국 기업 에너지 문제? 클라우드가 키”
나델라 CEO는 삼성전자 등 한국 제조 기업이 겪는 에너지 전환 문제도 “클라우드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기존 방식의 서버를 클라우드로 전환하면 지금보다 90% 이상 전력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경제 위기가 글로벌 공급 문제에서 비롯됐고, 디지털 전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발표했는데 핵심을 잘 짚었다”고도 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윤 대통령이 지난 14일 기업인 서밋 기조연설에서 “현재 세계경제 위기는 공급 측 충격이 크게 작용한 만큼, 민간 주도의 디지털 전환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나델라 CEO는 “한국이 강한 제조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이뤄져야 미래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고 했다.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한 나델라 CEO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그리고 이마트 경영진과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나델라 CEO는 ”한국은 반도체·게임·유통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혁신 기업이 많고 MS에도 중요한 시장”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우선순위를 항상 염두에 두겠다”고 했다.
그는 이날 오전 첫 일정으로 한국 개발자들을 만났다. MS 관계자는 “개발자 출신인 나델라 CEO는 항상 외국 방문시 현지 개발자 미팅을 최우선적으로 잡는다”고 했다. 나델라 CEO 앞에서 자신이 만든 앱을 시연한 두산에너빌리티 생산설비관리팀 직원 이원택씨는 “MS의 앱 개발 도구(파워앱스)를 한 달간 독학해 창원공장 재고관리용 앱을 만들었다”고 했다. 전세계 3D 의상디자인 시장 점유율 1위인 스타트업 클로버추얼패션의 오승우 대표는 “MS 클라우드 기반으로 가상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더 빠른 결과물이 나오고, 원단 소모량도 70% 이상 줄여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델라 CEO는 발표 중간중간 “만든 앱을 다른 회사에 공급할 계획은 없느냐” “주요 고객사가 어디냐”며 질문을 이어갔다. 이어 한 유통 대기업 개발자가 “MS의 협업툴 팀즈 내 일부 기능이 한글화가 안 됐다”고 하자, 나델라 CEO는 “몰랐다. 한국어를 100%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