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영상검색기술 스타트업 트웰브랩스는 캐나다의 AI 전문 벤처캐피털 래디컬벤처스와 실리콘밸리 인덱스벤처스로부터 초기 투자금 160억원을 조달했다고 6일 밝혔다. 이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원하는 영상을 찾아주는 AI. 영상에 나오는 특정 대사나 상황을 문자로 묘사만 해도 해당 영상과 장면을 찾아주는 ‘영상 검색’인 셈이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고 회사 규모도 창업자 이재성(28) 대표를 포함해 엔지니어 21명이 전부지만 해외 투자사들은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큰 기술”이라며 선뜻 투자에 나섰다.
올해 하반기 글로벌 벤처 업계가 투자 혹한기를 맞고 있지만, 확실한 기술과 비전을 가진 스타트업에는 여전히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지난 6월부터 지난 6일까지 사업 초기(시드, 시리즈A)에서 본격 사업 확장 단계(시리즈 B)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투자금 100억원 이상을 조달한 스타트업이 51곳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는 블록체인과 암호기술, 커머스, 자율주행, 가상현실, 인공지능 분야 기업들이 많았다.
가장 많은 투자금을 받은 곳은 AI반도체 팹리스(설계전문) 스타트업 리벨리온(920억원 투자 유치)이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투자사들은 ‘아껴서 오래 버티라’는 의미의 돈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며 “글로벌 경쟁 기업이 모두 어려울 때, 투자금을 발판으로 확실한 기술 격차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등 업계 결산 리포트와 매체 자료를 취합해 정리한 것이다.
①블록체인(분산저장)과 암호기술
가장 많은 투자금이 집중된 곳은 7개 스타트업이 투자받은 블록체인·암호기술 분야다.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 블록체인·암호기술을 파고들어 IT 보안 서비스나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들이다. 특히 티오리(200억원), 모놀리(180억원), 노티파이(140억원), 에이포엑스(129억)는 회사가 갓 설립된 상태에서 투자(시드투자)를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가상화폐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블록체인과 암호기술은 여러 IT 서비스에 도입될 것”이라며 “이 분야 유망한 인재들이 모인 스타트업이라면 입도선매하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티오리는 미국 카네기멜론대 해킹동아리 출신인 박세준 대표를 중심으로 세계 해킹대회(데프콘) 출신 유명 해커들이 설립했고, 모놀리는 삼성SDS 블록체인연구랩장 출신인 성기운 대표가 세운 곳이다.
②글로벌 타깃 비즈니스
반도체(2곳)·자율주행(4곳)·인공지능(4곳) 분야 스타트업들도 투자 혹한기에 넉넉한 자금을 받았다. 주식거래 AI를 위한 전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리벨리온, BMW 독일 공장에 내부용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서울로보틱스(308억원 유치)가 대표적이다. 두 회사는 각각 미국 월스트리트와 글로벌 완성차 업체라는 세계 무대를 타깃으로 한다.
미래 기술 분야가 아니라도 해외 시장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비즈니스에도 수백억원 투자가 몰렸다. 미국 아마존에서 국산 유기농 생리대를 팔아 깜짝 인기를 끌었던 스타트업 라엘은 433억원, 노티드(도넛)·다운타우너(버거) 같은 국내 외식 인기 브랜드를 만든 GFFG도 300억원 투자를 받았다. 두 회사 모두 미국에 거점을 만들고, “미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히트를 하겠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③틈새시장(니치마켓)을 노려라
틈새시장을 겨냥한 확실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도 높은 몸값을 인정받았다. 스타트업 ‘뽀득’은 식당·어린이집·유치원 등에서 식기를 수거해 세척·살균해 다시 배달해주는 식기 렌털업 시장을 최초로 개척해 지난 6월 33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를 위해 국내 주요 거점에 자동화 식기세척장을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통했다. 노년층·어린이 돌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요양보호사를 연결해주는 케어링, 아동돌봄지도사를 연결해주는 째깍악어 같은 돌봄 서비스 스타트업도 100억원 이상 투자를 받았다.
동남아 시장에서 카톡 선물하기와 비슷한 ‘모바일 선물’ 비즈니스를 개척하고 있는 쉐어트리츠는 8월 Z홀딩스 등으로부터 200억원을 투자받았다. 한 벤처캐피털 심사역은 “무리하게 거대한 시장을 노리겠다는 회사보다 작아도 확실한 시장을 꽉 잡겠다는 회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시드, 시리즈 A~C
스타트업이 투자금을 조달하는 시점을 구분하는 단어. 갓 설립돼 시제품만 있는 상태에서 받는 것이 시드(seed) 투자,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한 직후 받는 투자는 시리즈 A, 사업 본격 확장 단계는 시리즈 B, 운영 자금을 지원받는 단계는 시리즈 C 이후로 구분한다. 초기 단계 투자금을 많이 유치할수록 성장 가능성도 높다는 의미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