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주도권을 둘러싼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의 기술 전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미국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AI가 개발한 AI 채팅봇 챗GPT가 전 세계에 신드롬 수준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를 지켜보던 미국의 구글, 중국의 바이두, 러시아의 얀덱스, 한국의 네이버 같은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이 너도나도 AI 개발과 서비스 출시 경쟁에 뛰어들었다. 미국 포브스지는 “새로운 AI 전쟁이 발발했다”고 했다.
포문을 연 곳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다. 마이크로소프트는 7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주 레드먼드 본사에서 챗GPT를 적용한 인터넷 검색 엔진 ‘빙(bing)’을 공개했다. 사용자가 대화 형식으로 원하는 것을 물으면 빙에 탑재된 AI 챗봇이 자세한 답을 해준다. 검색창에서 직접 일일이 찾지 않아도 된다. 큰 화제를 모았던 챗GPT는 2021년까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어진 질문에 답을 하지만, 빙은 1시간 전 최신 뉴스까지 반영한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최고경영자)는 “AI 기반 검색 엔진 출시는 클라우드(가상서버) 서비스가 나오기 시작하던 2007~2008년 이후 가장 큰 사건”이라며 “AI 기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 범주를 재편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 새로운 레이스가 시작됐다. 우리는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MS의 질주에 다급해진 것은 세계 검색 엔진 1위 업체인 구글이다. 구글은 그동안 AI 윤리를 의식해 개발하던 AI의 공개에 보수적이었지만 최근 이런 기조를 바꿨다. 지난 6일 챗GPT에 맞서는 AI 챗봇 ‘바드’를 공개했다. 구글은 올해 안에 새로운 AI 서비스 20여 개를 출시할 예정이고, AI 챗봇과 구글 검색을 결합하는 것도 진행할 예정이다.
중국 최대 검색 업체 바이두도 챗GPT와 유사한 AI 챗봇을 3월에 출시한다고 밝혔고, 러시아의 얀덱스도 챗봇 ‘YaLM 2.0′ 개발에 나섰다. 한국 업체들도 글로벌 AI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 네이버는 한국판 챗GPT인 ‘서치GPT’를 상반기 출시할 계획이고, 카카오는 자체 개발한 ‘KoGPT’를 접목한 대화형 AI를 올해 안에 선보일 예정이다.
7일(현지 시각)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공개한 AI챗봇을 결합한 ‘빙’은 새로운 검색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다. 더는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일일이 키워드(검색어)를 입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검색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됐다”고 했다.
◇AI 검색 시대 개막
이날 공개된 MS의 검색 엔진 빙엔 오픈AI의 챗GPT 업그레이드 버전이 적용됐다. MS는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에 12조원을 투자하며 강력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날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지난 20년간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 같다”고 했다. 빙 사용 방식은 챗GPT 사용법과 비슷하다. 일단 웹 브라우저인 엣지를 통해 검색 엔진 빙에 접속해야 한다. 이후 ‘채식주의자 친구를 집으로 초대할 때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지’ ‘멕시코로의 5일간 여행 일정을 짜달라’고 묻거나 지시하면 챗봇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빙은 이와 함께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거나 해당 답변의 근거가 되는 사이트 링크를 보여준다. 출처를 밝히는 것이다.
현재 MS는 제한된 사람에게만 새로운 빙을 테스트용으로 제공하고, 추후 수주 안에 대중에게 확대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MS는 새로운 빙이 현재는 웹 브라우저 엣지에서만 가능하지만 앞으로 크롬 등 다른 웹 브라우저에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는 “이 도구는 우리가 일을 더 잘하고 고된 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계가 우리를 몰아낼 것이라는 신호가 아니라 긍정적인 진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글도 최근 AI챗봇 바드를 내놓고 향후 이를 구글 검색과 연동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국 최대 검색 기업인 바이두는 AI의 신경세포 격인 매개변수가 챗GPT의 1.5배가량인 AI 언어 모델 기반 AI챗봇을 3월 출시할 계획이다. ‘러시아의 구글’이라 불리는 얀덱스, 한국의 네이버와 카카오, 통신 3사도 AI챗봇 개발에 뛰어들었다.
◇뜨거워지는 AI 검색 전쟁
AI 검색 시대는 현재 테크 기업들의 수익 구조를 통째로 뒤바꿀 가능성이 있다. 현재 구글 같은 검색 엔진 업체의 주 수입원은 검색 광고다. 사용자들의 키워드 입력에 따른 사이트 링크를 보여주는 현재와 달리, 사용자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광고를 붙일 수 있는 사이트를 노출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바이두의 AI챗봇 소식을 전한 중국 펑파이 신문도 “바이두 역시 챗GPT가 촉발한 디지털 광고 시장의 격변을 피해가지 못할 것으로 보고 서둘러 기술 테스트에 뛰어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AI가 엑셀·파워포인트 같은 사무용 프로그램이나 코딩에도 사용되면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테크 기업 AI 전쟁의 최후 승자는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는 클라우드(가상서버) 업체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이를 통해 서비스하는 AI챗봇과 AI 검색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데, 이러한 검색량이 많아질수록 클라우드 사용량은 더욱 커지게 된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이 때문에 테크 업체들의 AI 기술 경쟁에서 가장 이득을 챙기는 곳은 지금 조용하게 있는 클라우드 업계 1위 아마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생성AI(데이터를 학습해 새 콘텐츠를 만드는 AI)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투자 혹한기에도 이 분야에는 돈이 쏠리고 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는 최근 기업가치 290억달러(약 36조원)에 지분 매각을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년여 만에 기업 가치가 2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AI 스타트업에도 투자가 몰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생성 AI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13억7000만달러(약 1조6700억원)로 지난 5년간 투자금에 맞먹는 액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