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기대와 달리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테슬라, 구글의 웨이모, GM의 크루즈 같은 여러 업체가 2020년대 초반 자율주행차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상용화는 요원하다. 테크 업계는 완전 자율주행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러한 판단을 7년 전 내리고, 완전 자율주행이 아닌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개발에 집중해 성장하는 한인 스타트업이 있다. 미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있는 팬텀AI다. 이 회사는 최근 시리즈C 펀딩(스타트업 후기 투자)을 통해 3650만달러(약 470억원)를 조달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미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팬텀AI 차고에서 조형기 대표가 자사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설루션이 탑재된 차량 앞에 서서 웃고 있다. 조 대표는 "인텔의 모빌아이를 대체하는 것이 목표"라며 "내년엔 올해보다 3~4배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김성민 기자

최근 마운틴뷰 사무실에서 만난 조형기(44) 팬텀AI 대표는 “사람이 운전하면서 파악하는 수백 개의 돌발상황을 자율주행 시스템에 학습시키려면 수백, 수천 가지를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완전 자율주행보다는 그 전 단계인 레벨2~3 단계의 원천기술을 갖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제한된 지역에서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를 레벨4, 완전 자율주행차를 레벨5라고 한다. 레벨2~3는 카메라와 레이다, 라이다를 달고 정해진 시나리오에서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자율주행 수준을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자율주행 택시는 10년, 자율주행 셔틀과 트럭은 3~5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했다. 테슬라의 FSD(완전자율주행) 시스템도 실제로는 레벨2~3 수준이라는 것이다.

조 대표는 연세대 석사를 마치고 2008년 미 카네기멜론대로 유학을 갔다. 자율주행차에 탑재되는 카메라, 레이더, 라이다 같은 센서를 통합하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테슬라에 입사해 자율주행 시스템인 오토파일럿 개발팀에 합류했고, 2016년 현대자동차 출신인 이찬규 박사와 팬텀AI를 차렸다. 자동차 ADAS 시스템에 들어가는 컴퓨터 비전(시각)과 영상인식 알고리즘을 만드는 회사다. 쉽게 말해 차량이 운행할 때 주변 사물과 차량의 움직임을 정확히 포착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그는 “자율주행 비전 인식 기술에서 독보적인 인텔의 모빌아이를 대체하겠다는 포부로 창업했다”고 했다. 현재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는 모빌아이의 설루션을 쓰는데, 성능은 더 좋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싼 자사 제품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팬텀AI의 설루션은 차량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포착되는 더 많은 시각 정보를 실시간으로 빠르게 처리하는 AI 딥러닝(인공지능 심화학습) 엔진이 특징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AI 엔진보다 4배 빠른 성능에 차량의 움직임과 차선 변화를 추적하는 트래킹 기술에서도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자율주행 성능에 우위로 이어질 수 있다.

팬텀AI는 올 4분기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ADAS 설루션을 본격적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모빌아이 대신 공급사로 들어간 셈이다. 조 대표는 “해당 업체와 4분기부터 공급하기로 계약을 끝낸 상태”라면서 “거창한 자율주행보다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여 대중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