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29일(현지 시각) 전세계 반도체주(株)가 일제히 상승했다. 현재의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지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상당수 전문가와 시장조사 기관들도 하반기에는 반도체 사이클이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오픈AI의 인공지능(AI) 챗GPT 열풍이 확산되면서 빅테크들이 AI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조만간 메모리 반도체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 반등 기대감에 모처럼 훈풍
29일부터 반도체를 중심으로 증권가에 훈풍이 불었다. 지난 분기에 20년 만에 분기 최대 적자를 낸 미국 대표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의 주가는 전일 대비 7.2% 급등했다. 시스템 반도체 1위 기업인 인텔도 7.6% 올랐고, 반도체 장비 업체인 램리서치(6.3%)를 비롯해 퀄컴(3.1%), 엔비디아(2.2%), AMD(1.6%)도 상승세였다. 반도체 대장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3.27% 상승했다. 30일 국내 증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반도체 장비 대표 업종인 원익IPS 등이 일제히 올랐다.
국내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경기 악화에도 불구하고 최근 삼성전자의 300조원 투자 발표 등 희소식이 잇따르면서 제조업 체감경기도 4개월 만에 반등했다. 덩달아 전체 산업 체감경기도 7개월 만에 오름세를 보였다. 한국은행이 30일 발표한 ‘3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 이달 제조업 업황 BSI는 전월보다 7포인트 오른 70을 기록했다. BSI는 현 경영 상황에 대한 기업가들의 판단·전망을 바탕으로 산출한 통계로, 작년 12월부터 3개월 연속 하락해 지난 2월엔 2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63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 황희진 통계조사팀장은 “반도체 가격이 하반기 개선될 것이란 전망 속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가 감산 없이 설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며 “반도체 제조 장비 등 협력사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빅테크 투자에 앞날 달렸다
이런 장밋빛 전망의 근거는 ‘AI 열풍’이다. 마이크론이 29일 3조원에 달하는 분기 적자를 발표하고도 오히려 주가가 급등한 것도 AI 때문이다. 마이크론 산제이 메흐로트라 CEO(최고경영자)는 이날 실적 발표에서 “AI서버에는 일반 서버의 8배에 달하는 D램과 최대 3배 수준의 낸드플래시가 들어간다”며 “AI가 데이터센터 수요 성장의 지속적인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AI 이벤트’를 여는 등 치열한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면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곧 폭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각종 AI 서비스를 구현하려면 해당 연산에 최적화된 두뇌 역할 반도체뿐 아니라 고용량·고대역폭을 갖춘 메모리 반도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메모리 기업들도 잇따라 대규모 감산(減産)을 단행하며 메모리 가격 반등에 사활을 걸고있다.
증권가에선 반도체 시장 반등의 시기를 3분기(7~9월)로 보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여전히 반도체 기업들의 재고가 많은 데다 스마트폰·PC 등 IT 시장과 ‘큰손’인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가 늦게 살아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마이크론의 재고 상황에 대해 “터널 끝에서 빛이 살며시 보이기 시작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메모리 기업들이 생산을 계속 축소했지만 서버, 스마트폰, 노트북 같은 제품 수요가 너무 약해 여전히 반도체 공급 과잉 상태”라며 “하반기에도 가격 하락이 지속될지 여부는 수요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