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중요(significant)’ 머신 러닝(기계 학습) 개발이 한 건도 없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머신 러닝은 인공지능(AI)이 방대한 데이터에서 스스로 학습해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를 비롯해 최근 각광받고 있는 오픈AI의 채팅로봇 챗GPT 등이 모두 머신 러닝으로 만들어졌다.

미 스탠퍼드대 인공지능(AI) 연구소가 3일(현지 시각) 발표한 ‘글로벌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요 머신 러닝 개발을 가장 많이 한 국가는 미국(16건)으로 2위 영국(8건)의 두 배에 달했다. 중국(3건), 캐나다·독일(2건) 등이 뒤를 이었다. 프랑스, 인도, 이스라엘, 러시아, 싱가포르 등도 모두 한 건 이상씩 개발에 성공했지만 한국은 한 건도 없었다. 네이버, 카카오, SK텔레콤, KT 등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AI 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에서 AI에 대한 민간 차원의 투자는 적지 않은 편이었다. 국내 민간에서 지난해 AI에 투자한 금액은 31억 달러(약 4조759억원)로 세계 6위 수준이다. 1위에 오른 미국 민간 투자 금액의 15분의 1 에 불과하지만, 공동 4위에 오른 이스라엘, 인도(32억 달러)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한국은 투자금액에 비해 새로 투자받은 기업 수는 유독 적은 편이었다. 지난해 새로 투자를 받은 AI 기업 수는 22개로 세계 13위에 불과했다. 1, 2위인 미국(542개), 중국(160개)은 물론 이스라엘(73개), 인도(57개), 싱가포르(36개), 일본(32개)보다도 훨씬 적었다. 업계 관계자는 “AI 열풍에도 불구하고 대기업과 일부 스타트업 위주로 투자가 이뤄지면서 생태계가 다양하게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이 오랜 기간 AI 투자에 소홀했다는 점도 여실히 드러났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의 누적 투자액은 55억 달러였는데 지난해의 투자금액이 이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챗GPT나 이미지 생성 AI ‘달리’ 같은 생성형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2022년에야 뒤늦게 반짝 투자에 나섰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국회나 정부 부처에서 통과된 AI 관련 법안은 한 건도 없었다. 다만 AI에 대한 일반인의 호감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설문조사에서 ‘AI를 사용한 제품이나 서비스엔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라는 문장에 동의한 응답자는 60%에 달해 세계 9위를 차지했다. 호감도 1위는 중국이었다. 스탠퍼드 AI연구소는 2017년부터 매년 AI 인덱스 결과를 발표한다. 지난 1년간 세계 AI 업계에서 일어난 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데이터로 AI업계에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