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 오브 페임(Hall of Fame)>

지구와 우리 삶을 바꾼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발자취를 다룹니다.

이들의 한 걸음이 인류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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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볼. /위키미디어

한센병은 한때 문둥병 또는 나병으로 불렸습니다. 온몸이 썩어가는 듯한 이 질병에 걸리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딴 섬에 보내거나 철저히 격리됐습니다. 성경에 기록돼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혔지만 20세기 초반만 해도 뚜렷한 치료제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센병은 전 세계적으로 일부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연간 1만명당 1건 미만으로 발생하는 드문 질환이 됐습니다. 또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한 질병으로 분류됩니다.

뉴욕타임스의 부고 시리즈 ‘오버룩드(overlooked·간과되다)’는 최근 앨리스 볼이라는 한 여성의 잊힌 삶을 집중적으로 조망했습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반을 살았던 흑인 여성이자 화학자였던 볼은 한센병 정복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작 24세로 요절한 뒤 소속 대학 총장과 동료 교수는 볼의 연구 성과를 훔쳐 발표했고 철저히 볼의 이름과 업적을 숨겼습니다. 볼이 잊히지 않은 것은 또 다른 동료 과학자 덕분이었습니다.

◇볼 메소드 개발한 젊은 흑인 여성

한센병 근절이라는 명목으로 환자들을 단종(斷種ㆍ정관수술)했던 단종대(왼쪽). 환자들이 사는 섬 왼편‘2번지’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다.

1922년 1월1일, 한 의학 저널에 하와이 칼리히 병원의 외과 의사 해리 홀만이 “한센병(의학적 명칭은 나병)에 대한 민간요법이었던 생약 차울무그라 오일(대풍자유)로 실제로 한센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연구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아시아 원산 나무인 차울무그라 나무(Hydnocarpus wightianus)의 씨앗에서 추출한 차울무그라 오일은 당시 한센병 치료용으로 민간에서 복용하거나 바르던 물질이었습니다. 한센병을 일으키는 ‘나균(Mycobacterium leprae)’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겨운 맛이 나는 데에다 속이 쓰리고, 피부에 주입하면 덩어리가 지고 흡수가 되지 않아 물집을 만들어 냈습니다. 다른 치료제가 없으니 쓰긴 했는데 일부 환자들에서만 효과가 있었고, 완치 효과도 없었습니다. 홀만은 이 차울무그라 오일을 화학적으로 변형 재조합해 간단한 주사제로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며 ‘볼 메소드(볼 방식·Ball Method)’라고 명명했습니다. 한센병 주사 치료제를 만들어낸 하와이대 화학 강사이자 6년 전 세상을 떠난 앨리스 볼의 이름을 붙인 겁니다. 뉴욕타임스는 “이 볼 메소드는 1920~30년대 항생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한센병 치료에 가장 널리 사용됐다”면서 “고립된 한센병 환자 집단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출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습니다.

◇철저히 잊힌 존재와 업적

차울무그라 나무. /트위터

하지만 당시 20여년에 걸쳐 볼 메소드를 사용한 의사도, 처방을 받은 환자들도 볼 메소드라는 이름 자체를 몰랐습니다. 앨리스 볼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고작 23세에 이 방식을 개발했던 볼은 얼마 지나지 않아 1916년 세상을 떠났고 그의 연구 성과는 도둑질당했습니다. 위대한 여성 흑인 화학자이자 젊은 천재는 철저히 잊힌 것이죠. 뉴욕타임스와 위키피디아는 그 경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홀만의 논문에 앞서 1920년 미국 화학학회지와 1922년 공중 보건 리포트에는 하와이대 총장인 아서 딘과 화학과 교수 리처드 렌샬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 논문에서 딘은 볼의 연구를 자신의 이름을 따 ‘딘 메소드’라고 명명했고, 하와이대에서 대량으로 약을 생산해 판매하는 차울무그라 벤처를 설립했습니다. 권위 있는 대학 총장과 교수가 훨씬 더 유력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자신들의 연구 업적을 널리 알리는 꼼수를 쓴 겁니다. 이들은 동료 연구자들이 도움이 됐다고 논문에 썼지만 볼의 이름은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학사 연구자들에 따르면 딘과 렌샬은 볼의 연구 성과를 가로챈 사람들일 뿐입니다. 홀만은 1915년 식물의 화학적 특성을 분석한 볼의 석사 학위 논문을 본 뒤 볼에게 연락해 차울무그라 오일로 치료제를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볼은 홀만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일의 화학적 조성을 분석했다”면서 “오일의 두 가지 핵심인 차울무그릭산과 하이노카르픽산을 분석한 뒤 활성 성분인 지방산을 분리했다”면서 “지방산을 변환하고 화학적으로 변형시켜 수용성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오일을 사람에게 주사해도 잘 흡수되는 형태로 변환시켰다는 얘기입니다.

◇한센병 환자 구원

홀만은 볼이 알려준 방법을 이용해 환자들에게 시험했고 실제 살균력을 확인합니다. 당시 홀만은 논문에 “4년간의 임상시험에서 3개월간 치료를 받은 84명의 환자는 음성이 됐고, 모든 병변이 없어서 격리에서 해제됐다”고 썼습니다. 홀만은 결핵 환자를 상대로도 볼 메소드를 시도했습니다. 한센병을 일으키는 나균은 결핵균의 사촌 격에 해당합니다. 다만 결핵에서는 한센병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볼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홀만의 치료는 하와이의 한센병 환자들을 해방했습니다. 당시까지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은 몰로카이라는 섬에 보내져 죽을 때까지 격리돼야 했습니다. 볼 메소드는 이들을 구원한 겁니다.

볼의 이런 성과가 제대로 알려진 것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입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하와이대 교수 캐슬린 타카라와 스탠리 알리는 차울무그라 치료법 개발의 진실을 찾기 위해 기록을 뒤졌습니다. 이후 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그의 연구 성과를 어떻게 도둑질했는지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와이 몰로카이섬에 격리된 한센병 환자들. /위키미디어

◇’백인’으로 기록됐던 안타까운 시대

볼은 1892년 7월24일 시애틀에서 변호사이자 신문편집자인 제임스 볼 주니어와 사진작가 라우라 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볼의 할아버지는 19세기 유명 사진작가이자 노예 폐지론자였던 제임스 볼 시니어였습니다.

볼은 학창시절 뛰어난 과학 실력을 보였다고 합니다. 워싱턴대에서 1912년 제약 화학, 1914년 약학으로 두 개의 학위를 받았습니다. 과학사 연구자들은 볼이 화학이 관심을 가진 데 대해 그의 부모와 할아버지가 사진 현상을 위해 수은 증기와 요오드 감광 은판을 사용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볼의 요절은 화학 실험실 사고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와이 지역 신문인 더 퍼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는 “볼은 실험실 시연 중에 염소 가스에 노출되면서 질병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하버드 의대 그레고리 펫스코는 뉴욕타임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가 20대에 세상을 떠난 것이 정말 아쉽다”면서 “대부분의 화학자는 30~40대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발걸음 뗀다는 점을 감안하면, 볼이 계속 살아 있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볼은 하와이대 최초의 여성이자 동시에 최초의 흑인 여성 강사였습니다. 볼의 업적에도 그가 살았던 시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얘기도 있습니다. 볼은 출생과 사망 증명서에 모두 ‘백인’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하와이대 출판부에서 펴낸 ‘하와이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볼의 부모는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 커뮤니티의 저명 구성원이었지만, 딸이 직면하게 될 편견과 인종차별을 줄이고 백인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백인이라고 표시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명예 되살리자 노력’ 지금도 계속

앨리스 볼의 업적을 기리는 교육용 포스터. /STEM

볼의 명예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와이대는 2000년 학교에 있는 차울무그라 나무에 볼을 기념하는 명판을 설치했습니다. 같은 날 하와이주는 2월29일을 ‘앨리스 볼 데이’로 선언했습니다. 2016년 하와이 매거진은 볼을 하와이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에 올렸고, 볼의 탄생지인 시애틀 그린우드에는 2018년 볼의 이름을 딴 공원이 생겼습니다. 2020년 11월6일에는 앨리스 위성이 우주로 발사됐습니다. 현재 하와이대 학생들은 학교의 ‘딘 홀’을 ‘볼 홀’로 바꾸자는 운동과 함께 딘 전 총장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학교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볼 메소드는 1930년대 항생제인 ‘설파제(sulfa drug)’가 개발되면서 더는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고작 20대 초반의 흑인 여성이 이뤄낸 위대한 업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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