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본격적인 초거대 AI(인공지능) 개발에 착수했다. 8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초 연구·개발 조직인 삼성리서치 주도로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 AI 개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7월 말 초기 버전 개발 완료를 목표로 관련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삼성전자 관계자는 “다른 사내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들은 모두 GPU(그래픽처리장치) 사용이 제한됐다”며 “주요 계열사에도 AI 개발 관련 TF(태스크포스)팀이 꾸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초거대 AI가 인간의 언어·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해선 GPU가 필수적인데, 두 달 안에 개발을 마치기 위해 삼성전자가 보유한 GPU 자원을 모두 AI 개발에 투입한 것이다.
◇협업 대신 독자 개발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AI는 우선 소프트웨어 개발·문서 요약과 번역 등 사내 업무용으로 쓰일 계획이다. 삼성은 챗GPT를 도입했다가 지난 4월 내부 정보 유출 문제가 불거지자 사내PC를 통한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사용을 일시적으로 금지했다. 오픈AI·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이 개발한 외부 AI에 의존하지 않고 보안 문제가 없는 자체 AI를 개발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개발 중인 AI를 일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당초 삼성전자는 AI를 활용하면 소프트웨어 개발 및 반도체 설계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다양한 AI 도입 방안을 두고 고심해 왔다. 그룹 경영진 회의에서도 오픈AI·MS·구글을 비롯해 국내 네이버 등 다양한 기업과 협업 방안이 거론됐지만, 최근 이재용 회장이 참석한 최고경영진 회의에서 “빠른 시일 내에 자체 개발하라”는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핵심 기술 데이터 유출 문제 외에도 AI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는 가운데 해외 빅테크 기업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글로벌 기업에 뒤처질라...다급해진 국내 기업들
LG·네이버·카카오·SKT·KT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도 모두 자체 초거대 AI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 LG는 ‘엑사원’,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카카오는 ‘코(Ko)GPT’, SKT는 ‘에이닷’ 등 각자 이름은 다르지만 인간의 언어와 이미지를 대량으로 AI에 학습시켜, AI가 인간처럼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챗GPT(오픈AI), 빙(MS), 바드(구글) 등 해외 빅테크 기업들이 이미 출시한 AI와 유사한 제품을 후발주자로 쫓아가는 격이다.
성능이 우수한 챗GPT를 자체 서비스에 결합해 출시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지만, 기업들은 ‘빅테크 식민지’를 우려한다. 챗GPT는 기업들이 자사 서비스에 챗GPT를 응용해 결합할 수 있는 서비스(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현재 챗GPT 사용 비용은 AI가 한글 약 500자를 답하는 데 2원 수준이다. 하지만 한 대기업 AI 개발자는 “지금은 GPT를 저렴한 가격에 활용할 수 있지만, 챗GPT에 종속된 상황에서 비용이 오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특히 플랫폼 기업들은 고객 데이터가 곧 경쟁력인데, 챗GPT를 통해 데이터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7월 중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완성도가 떨어져 출시 일정을 연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브레인도 지난 3월 카카오톡을 통해 채팅형 AI ‘다다음’을 시범 서비스했다가 하루 만에 중단했다. 수많은 이용자의 데이터를 처리할 인프라와 AI 성능이 받쳐주지 못한 탓이다. LG·SKT·KT 모두 자체 개발한 초거대 AI를 내놓았지만 계열사 및 자사 서비스를 제외하면 뚜렷한 활용처를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위기감에 우후죽순 AI를 내놓고 있지만, 역량을 한데 모아도 모자라는 형국에 자원만 낭비하는 것 같다”며 “이러다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면 글로벌 시장 공략도 하지 못하는 서비스만 난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