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ARM이 다음 달 미국 나스닥에 상장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번 상장이 한동안 잠잠했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기업 공개(IPO) 붐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증시가 랠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경기 불황으로 IPO를 미룬 업체들이 하반기에 대거 재도전할 뜻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최대어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ARM 상장 소식이 알려진 이후 상장을 미뤄둔 다른 기업들도 IPO를 서두르고 있다고 1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ARM 지분 중 비전 펀드가 갖고 있던 지분 25%를 인수하며 상장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했다. 소프트뱅크는 ARM을 약 640억달러(약 86조원) 기업 가치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외신들은 “상장 시 올해 IPO 중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며 “다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도 상장 계획을 속속 앞당기고 있다”고 밝혔다.
◇하반기 줄 상장 예고
이번 가을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 가운데 ARM의 다음 타자로는 마케팅 자동화 플랫폼 클라비요가 있다. 클라비요는 이메일 등으로 마케팅과 고객 관리를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선보여 2021년 투자 유치 당시 95억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애용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국민 샌들 업체 버켄스탁도 올가을 IPO에 나설 예정이다. 이 회사는 70억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예상하고 있다.
1~2년 전 상장을 추진하다 경기 불황으로 IPO를 미룬 기업들도 속속 IPO를 재추진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상장 예정 기업은 미국 최대 식료품 배송 업체인 인스타카트다. 앱으로 식료품을 주문하고 결제하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배달원이 집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다. 인스타카트는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된 코로나 기간 급성장해 지난해 5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상장 의향서를 제출했지만 투자 시장이 악화하면서 계획을 보류했다. FT는 소식통을 인용해 “하반기 주식시장 안정 여부에 따라 연내 IPO를 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인스타카트의 기업 가치는 120억달러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 2021년 상장을 추진한 신분 검증 기업 소큐어도 다시 IPO를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 조니 에이어스 창업자는 “IPO 경험이 있는 새로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고용했다”고 밝혔다.
◇”IPO 대어 잡아라” NYSE·나스닥 경쟁
IPO 시장이 부활 조짐을 보이는 건 최근 미국 증시가 랠리를 이어가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발 빠르게 주식 매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WSJ는 자신만 뒤처지는 듯한 두려움에 추격 매수하는 ‘포모(FOMO)’ 증후군이 퍼지며 지난 1년 반 동안 얼어있었던 IPO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고 지난달 24일 보도했다.
그간 투자 불황기 속에 스타트업들이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이뤄낸 것도 시장엔 긍정적 요인이다. 돈이 풀리던 시기에 몸집만 불려온 스타트업들이 비용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흑자 전환을 위해 애쓴 결과이다. 실제 시장의 반응도 좋았다. AI 화장품 업체 오디티테크는 지난달 상장 첫날 35% 폭등하며 IPO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시장이 다시 활발해질 조짐을 보이자 미국 양대 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은 상장 유치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나스닥은 ARM과 인스타카트의 상장을, NYSE는 클라비요와 버켄스탁의 상장을 유치했다. 나스닥은 ARM 유치를 위해 5000만달러에 달하는 패키지를 제공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NYSE와 나스닥이 마케팅, 광고 등 다양한 유인책을 사용해 대형 IPO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며 “오랜 부진 끝에 IPO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