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진경

글로벌 유동성 위기로 한파가 몰아치는 스타트업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패션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 패션 상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에이블리’는 올해 3월 월간 기준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뒤 매월 영업이익이 2배씩 성장하고 있다. 작년 반기 손실액이 350억원에 달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40~50대 여성을 겨냥한 모바일 패션 상거래 플랫폼 ‘퀸잇’을 운영하는 ‘라포랩스’와 네이버가 300억원을 투자한 패션 스타트업 ‘브랜디’도 클릭률과 거래액이 크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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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비결, 개인 맞춤형 AI 추천

이들 스타트업은 공통적으로 인공지능(AI) 기반 개인 맞춤형 제품 추천 기술을 호실적의 1등 공신으로 꼽고 있다. 플랫폼 내 구매 이력과 검색 데이터, 선호 상품 표시와 리뷰, 심지어는 특정 상품 화면 체류 시간까지 학습한 AI가 고객 개인 취향에 맞는 제품으로만 화면을 구성해 더 많은 구매를 끌어내는 방식이다.

에이블리는 온라인 상거래 서비스를 출시한 지난 2018년 3월부터 자체 개발한 AI 알고리즘을 적용해왔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회원 수가 1100만명으로 커지면서 축적한 고객들의 ‘상품 찜(선호 상품 표시)’ 데이터만 약 12억개에 달한다”며 “양질의 데이터가 쌓이면서 이를 학습한 AI 알고리즘의 추천 기술 성과가 수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에이블리 플랫폼에 입점한 상위 20개 의류 브랜드의 지난 5월 기준 거래액과 주문 수는 전년 동기 대비 평균 각각 190%, 185% 늘어났다. 이들 브랜드는 모두 사람의 개입 없이 에이블리가 제공하는 AI 알고리즘 추천 상품으로만 제품을 노출한다.

작년 4월부터 AI 추천 서비스를 도입한 브랜디도 꾸준히 쌓아온 고객 데이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브랜디 관계자는 “추천 설루션이 적용된 브랜디 홈 화면 최근(7월 1~15일)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클릭률이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했고, 거래액은 116% 상승했다”고 말했다.

AI 기술은 스타트업 비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라포랩스는 과거 회원들에게 보내는 광고(Push) 메시지를 만들 때 타깃층 설정부터 내용과 제품 선정까지 모두 사람이 작업했다. 하지만 지금은 AI가 만든 내용을 사람이 검수만 해서 활용한다. 홍주영 라포랩스 대표는 “스타트업은 사업이 커질수록 인건비 부담이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는데, AI 자동화 기술로 인건비는 절감하고 매출만 효율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앞으로 이커머스(온라인 상거래) 시장에선 AI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유치 줄줄이 성공, 하반기 전망도 ‘맑음’

AI 기술을 내세운 스타트업들은 하반기 성장세가 더 가팔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품 단가가 높은 가을·겨울철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홍주영 대표는 “올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기준 흑자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들 기업들은 투자 한파에 고심하고 있는 다른 스타트업 업체들과 달리 거액을 투자받으며 실탄도 넉넉한 편이다. 에이블리는 지난 3월 사모펀드(PEF) 운용사 파인트리자산운용에서 ‘벤처 대출(Venture Debt)’ 형식으로 500억원을 유치했다. 라포랩스 역시 알토스 벤처스 등 벤처투자사에서 지난달 신규 투자금 340억원을 유치했다.

스타트업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성과를 보이고 있는 패션 스타트업들은 지난해 챗GPT가 등장해 AI 열풍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AI 기술을 적용하고 핵심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왔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경쟁 업체들보다 먼저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하우를 축적해온 만큼 벤처 투자 업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