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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의 전기가 전세계의 관심 속에 출간됐습니다. 700쪽에 가까운 전기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최고경영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등 다양한 유명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였습니다.
우연히 전기 중간을 폈더니 챕터 마지막에 머스크와 베이조스 두 사람이 과거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찍은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혁신가로 꼽히는 두 거물이 한 사진에 담겼다는 것만으로 흥미로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이 찍힌 2004년 당시엔 베이조스가 머스크보다 더 잘 나가는 소위 ‘인싸’(인사이더)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가 됐습니다. AI·로봇·전기차·전자칩 뇌이식 등 혁신 기술의 최전선에는 늘 머스크가 등장합니다. 전세계 언론도 머스크의 입만 바라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베이조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공식 석상이나 SNS에서 미래 기술에 대해 발언하는 경우가 최근 수년 간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AI 산업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13일 주요 빅테크 기업 총수가 집결한 ‘AI 인사이트 포럼’에선 베이조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서도 AI, 로봇 등 첨단 산업 전망에 대한 기사를 쓸 때 더 이상 베이조스에 대해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글로벌 테크 현장에서 베이조스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것입니다. 입버릇처럼 ‘혁신’을 외치던 원조 ‘혁신의 아이콘’ 베이조스는 어디로 간 걸까요.
◇블루오리진 발사 실패, 아마존고 철수...혁신 사라진 베이조스
베이조스는 원래 머스크보다 먼저 혁신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가난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베이조스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린이에게 위험할 수 있는 칼이나 공구를 가지고 놀게 했습니다. ‘기지가 없는 아이보다 손가락이 9개 밖에 없는 아이가 낫다’는 교육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우주 탐험에 집착하는 괴짜 소년으로 성장했습니다. 뉴욕의 펀드 회사에서 근무하던 1990년대 초반 인터넷 사용자가 해마다 2300%씩 성장하는 걸 보고 진로를 결정하게 됩니다. 1994년 시애틀의 한 창고에서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창업한 것입니다.
이후 그가 걸어온 길은 수많은 창업가, 기술 꿈나무들에게 큰 영감을 줬습니다. 베이조스는 유통·물류·식료품·디지털콘텐츠·미디어·우주개발 등 진출하는 분야마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며 ‘아마존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는 자율주행 로봇을 이용해 제품을 배송하고 대형 물류 창고는 사람 대신 로봇으로 채웠습니다.
테크업계에서 베이조스의 존재감이 조금씩 희미해진 것은 지난 2021년 2월 아마존 CEO 자리에서 내려오면서부터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반독점 조사가 막 시작되고, 아마존 직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노조 결성을 추진하던 어수선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회사 안팎에선 그의 은퇴 결정이 뜻밖이라는 목소리와 더불어 ‘이제 아마존 경영과 별개로 우주,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혁신의 꿈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실제로 그는 사임 당시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나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면서 “앞으로 새로운 제품들과 초기 단계인 계획들에 에너지를 쏟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데이-1(창업 첫날) 정신’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베이조스의 혁신은 아직까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엔 실패 사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가 창업한 우주 기업 블루오리진은 지난해 9월 무인 캡슐을 장착한 로켓 뉴셰퍼드 발사에 실패했습니다. 발사 1분 만에 엔진에서 불꽃이 나면서 궤도를 벗어났습니다. 지난 6월 말에는 로켓 엔진이 발사 테스트 도중 폭발하는 사고도 일어났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NASA(미항공우주국)의 달 착륙선 수주에 실패한 이후 직원 17명이 무더기로 회사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년 찬사를 받고 문을 연 세계 최초 무인 매장 ‘아마존고’는 지난 3월 기준 미국 매장만 25%를 없애며 사실상 철수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물건을 집어 걸어가기만 하면 결제가 된다’는 컨셉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그 이상의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며 외면 받은 것입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베이조스라면 무엇인가 더 있을거야’라고 기대했지만 다른 매장과 큰 차별화를 주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주·전기차...미래 기술 두고 머스크와 충돌
베이조스가 우주 산업에서 쓴맛을 볼 때마다 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민간 우주 산업의 라이벌인 머스크입니다. 회사 설립은 블루오리진이 2년 앞서지만, NASA(미항공우주국) 과학자들을 대거 영입해 먼저 두각을 나타낸 쪽은 스페이스X입니다. 머스크는 과거 한 모임에서 베이조스를 만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좋은 충고를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거의 듣지 않더라“(I actually did my best to give good advice, which he largely ignored.)
베이조스와 머스크는 사사건건 대립하는 관계였습니다. 2013년부터 우주 산업을 두고 본격적인 경쟁을 벌였습니다. 당시 미 항공우주국(NASA)이 안 쓰게 된 로켓 발사대 39A를 장기 임대할 계약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이 세게 맞붙었습니다. 당시 머스크가 계약을 따내며 승리를 했습니다. 머스크는 궁극적으로 화성에 인간을 살게 하겠다고 했지만 베이조스는 달에 가는 게 목표라고 밝히는 등 서로 제시하는 비전도 다릅니다.
머스크의 미래 비전이 하나씩 성공하면서 혁신 경쟁자인 베이조스의 입지는 더 좁아졌습니다. 머스크가 하는 계획은 당초 몽상가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전지구 통신망 구축 사업, 뇌에 전극을 심는 사업에서도 성과를 보이면서 진정한 혁신가는 머스크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이죠. 반면 베이조스는 머스크를 뛰어넘는 기발한 사업 발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사생활 위주 조명
2019년 전처 매켄지와의 이혼도 어느 정도 베이조스의 활동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베이조스는 이혼 당시 매켄지에게 아마존 주식 4%(1970만주)를 떼줬는데, 당시 주식 시세로 356억달러(약 47조원)였습니다.
최근 베이조스는 경영 활동이나 혁신 행보보다는 사생활 스캔들로 호사가의 입에 더 자주 오르고 있습니다. 베이조스는 지난 2021년 11월 미 LA에서 열린 한 파티 행사에서 여자친구 로렌 산체스가 자신을 옆에 두고 할리우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 몸을 밀착한 모습의 짤막한 영상을 SNS(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그는 ‘위험! 급경사 절벽’이라고 써진 경고 표지판에 기댄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리며 “리오(디캐프리오), 여기 와봐.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라고 밝혔습니다.
사생활 관련 뉴스가 더 많아지긴 했지만 베이조스는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혁신가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투자자로 변신한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샤킬 오닐이 지난 19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스타트업 전시회에서 베이조스에 대해 언급한 모습이 화제가 됐습니다. 오닐은 교사 없이 혼자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에듀테크(교육 기술) 업체 ‘에드소마’의 메인 투자자로 무대에 섰습니다. 그는 “과거에 한 아름다운 대머리를 가진 제프 베이조스라는 사람(아마존 창업자)이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것에 투자하라’고 했고, 그 말을 실천 중”이라며 “나는 부자이기에 에드소마처럼 사람의 삶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이조스가 오닐 뿐 아니라 과거처럼 전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혁신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주는 존재로 돌아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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