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시달리던 중견 가전 업체 위니아전자가 결국 법정 관리 절차에 들어갈 전망이다. 위니아전자는 지난 20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고 26일 심문기일을 갖는다. 같은 날 박현철 위니아전자 대표이사는 300억원대 임금 체불로 구속됐다. 코로나 이후 실적 부진을 겪던 위니아전자는 지난 2월 중국 톈진 공장을 매각하는 등 자구책을 찾아왔지만 결국 최악의 결말을 맞게 됐다.
벼랑 끝에 몰린 위니아전자의 뿌리는 1974년 세워진 대우전자다. 한때 삼성전자, LG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3대 가전 회사로 불렸던 대우전자는 1997년 외환 위기를 피하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다 2013년 동부그룹에 매각됐다. 이후 동부그룹마저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하자 2018년에는 대유그룹에 인수됐다. 대유그룹은 매각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레드오션이 된 글로벌 가전 업계 상황을 감안할 때 50년간 명맥을 유지해온 대우전자 역사상 최대 위기로 평가된다.
◇삼성 LG전자와 비견되던 ‘탱크주의’ 대우
1990년대 대우전자는 삼성, 금성사(현 LG전자)와 함께 ‘가전 3사’로 불렸다. 대우는 1991년 세계 최초 공기방울 세탁기를 출시하면서 세탁기 시장에서 금성사와 삼성전자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대우전자는 대우그룹의 ‘세계 경영’ 기치에 맞춰 멕시코,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에 현지 법인과 공장을 세워 해외시장 인지도를 높였다. 1999년 이 회사 마지막 공채로 입사해 2018년까지 근무했던 A씨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해외에 100개 이상 법인이 있고 매출은 4조원 가까운 회사였다”며 “남미와 중동 등에서는 브랜드 가치가 삼성이나 LG보다 높았다”고 했다.
1993년 기업 슬로건으로 내세운 ‘탱크주의’는 대우전자를 상징하는 대표적 표현이 됐다. 당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배순훈 사장이 주도했다. ‘탱크처럼 튼튼한, 그리고 고장 없이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뜻이다. 만년 3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크게 개선됐다. 1997년 세계 최초로 PDP TV 양산 제품을 출시했고 동영상 압축 기술,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국내외 특허만 1만여 개를 보유한 알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잘나가던 대우전자는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으며 휘청였다. 대우그룹은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를 맞교환하는 빅딜을 추진했으나 결렬됐고 대우전자도 다른 계열사들과 함께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우전자는 2001년 백색 가전 브랜드 ‘클라쎄’를 론칭하며 재기를 시도했다. A씨는 “외부 투자가 끊겼지만 연구 개발 인력이 헝그리 정신으로 무세제 세탁기, 3도어 냉장고, 벽걸이 냉장고 등 신제품을 계속 내면서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다”면서 “회사 사정은 어려워졌지만 직원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버텨나간 것”이라고 했다.
매각도 쉽지 않았다. 인도 비디오콘 컨소시엄, 모건스탠리 사모펀드, 이란계 엔텍합그룹, 스웨덴 일렉트로룩스 등과 차례로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기술 유출, 헐값 매각 등 논란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2013년에야 동부그룹에 매각되며 동부대우전자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2015년 동부그룹이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하자 또다시 매물로 나왔다. 자동차 부품 회사이자 2014년 만도그룹에서 김치냉장고 딤채 사업을 인수한 대유그룹이 종합 가전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며 대우전자를 점찍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매출 1조원이 넘는 탄탄한 중견 회사였다.
◇'대우’ 뗀 게 패착
삼성과 LG전자가 프리미엄 전략으로 시장을 넓혀온 것과 달리 시장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위니아전자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해외 매출이 90%인 상황에서 2020년 상표권 계약 만료로 ‘대우’ 브랜드를 뗀 것도 패착으로 꼽힌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로 해외 공장이 사실상 셧다운되면서 생산마저 마비됐다. 2019년 45억원이었던 영업적자는 2021년 175억원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감사 의견 거절을 받아 재무제표를 공시하지 않았다. 적자는 1000억원대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위니아전자가 포기한 ‘대우’ 상표권은 2021년 튀르키예 유명 가전 업체 베스텔로 넘어갔다. 지난 1일 독일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3에서도 베스텔은 대우 로고와 이름을 내걸고 TV와 각종 가전제품을 선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튀르키예 외에 남미, 중동 등에서는 여전히 대우전자가 제품 명가란 인식이 남아 있어 베스텔이 이를 활용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버린 ‘대우’ 브랜드가 다른 나라 기업 손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