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서비스로 이용자 60만명을 넘어섰던 나만의 닥터는 이번 달부터 병원 방문 및 진료 예약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개편했다. 화상으로 직접 진료가 가능한 기존 서비스에서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최저가 병원을 찾아 예약하거나 혈당·혈압 기록, 유전자 검사 등 개인 맞춤형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앱 내에서 건강 퀴즈를 풀어 포인트를 적립할 수도 있게 했다. 나만의 닥터를 운영하는 메라키플레이스 손웅래 공동대표는 “비대면 진료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어떻게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활로를 모색한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시기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9월부터 대폭 축소되면서 관련 업계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정부는 이달부터 비대면 진료 대상을 재진 환자로 한정했고, 섬이나 벽지 환자를 제외하면 약 배송도 금지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요청 건수는 5월 일평균 5000여 건에서 9월 374건으로 90% 이상 줄어들었다. 일평균 3290건에 이르던 약 배송은 현재 하루 4건 정도로 사업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정부 규제와 의료계의 반발로 오랜 기간 투자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활용할 수 없게 된 업체들은 다른 의료 서비스로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기존 서비스를 혁신하며 이용자들을 대거 끌어들였지만 결국 기득권의 텃세에 밀린 타다와 로톡과 비슷한 전철을 밟으며 불투명한 길을 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의료 포털, 취약계층 지원 등 새로운 활로 모색
비대면 진료 1위 사업자 닥터나우는 실시간 전문 의료인 무료 상담, 병원 찾기, 증상 찾기 등 의료 포털 서비스로 개편을 선언한 뒤 의료계와의 협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대한외과의사회와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활용한 병원 운영 효율화를 핵심으로 하는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병원 접수와 예약 통합 시스템을 마련해 환자 관리와 매출 분석 등까지 병원 서비스를 디지털로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솔닥은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구 남구청과 손잡고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취약 계층 비대면 진료 인프라 구축 사업을 진행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집이 아닌 주야간보호센터에서 영상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받고, 근처 약국에서 조제한 약을 센터에서 수령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라이프시맨틱스도 서울 의료 취약 계층에 태블릿과 혈압, 혈당, 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하고 서울시와 함께 비대면 건강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올라케어는 영양제 먹기나 걷기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로 개편했고, 소아과 대란 등으로 병원 진료 예약 서비스로 자리 잡은 똑닥은 지난 5일부터 유료화로 전환했다.
◇제한적 초진으로는 서비스 확대 불가
비대면 진료 업체들은 각자의 생존 방식을 찾아가고 있지만 불안감을 호소한다. 이미 비대면 진료 서비스에서 큰 손해를 봤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 영역에서 수익이나 투자를 얻지 못하면 곧바로 사업 자체를 접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비대면 업체 관계자는 “비대면 서비스는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 시장 판도를 바꿔 수익을 기대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계속 투자하며 플랫폼을 확장하는 단계였다”면서 “인력부터 투자까지 비대면 진료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다가 갑자기 서비스를 전환한 탓에 다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야간과 휴일 등 병원 영업 외 시간에는 비대면 진료 초진을 허용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의료계 반대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제한적으로 비대면 진료 초진이 허용된다 해도 이전과 같은 이용자 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비대면 진료 10건 중 8건은 월요일에서 토요일 9시에서 18시 사이에 이뤄졌다. 전체 비대면 진료 중 일요일과 공휴일 진료도 14.1% 수준이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관계자는 “제한적으로 초진을 허용한다 해도 약 배송 문제까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개점 휴업’ 상태를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