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가 세계 최고 수준인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캐나다 반도체 분석 업체 테크인사이츠 분석을 인용해 “지난 7월 출시된 중국 SSD(대용량 저장 장치)에 YMTC가 제조한 232단 낸드플래시가 탑재됐다”고 했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제조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 상황에서 200단의 벽을 뚫은 것이다. 낸드플래시는 적층 수가 높을수록 일반적으로 저장 용량이 크고 성능이 향상된다. 중국의 232단 낸드플래시는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최신 제품(238단)과 삼성전자(236단 추정)를 턱밑까지 쫓아온 수준이다.
갈수록 촘촘해지는 미국의 반도체 제재 속에서도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잇따라 첨단 제품 개발과 양산에 성공하고 있다. 지난 9월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SMIC가 7나노(nm·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이용한 스마트폰 반도체를 생산해 화웨이 최신 스마트폰에 탑재했다. 10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으로 여겨지던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 수입이 미국의 제재로 막혀 있는 상황에서 7나노 공정에 성공한 것이다. 린번젠 전 TSMC 부회장은 최근 “중국은 구형 장비로 5나노 공정도 성공할 것”이라며 “미국의 쓸데없는 제재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232단 낸드 쌓은 중국
지난 4월 YMTC는 첨단 낸드플래시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우당산’이라고 명명했다. 우당산은 도교 성지(聖地)이자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중국 무술의 중심지다. 중국 정부와 국영 투자사들은 9조원이 넘는 돈을 지난해 YMTC에 지원했고, 모든 제조 장비는 중국산 장비만을 사용해 개발하기로 했다. 이번 232단 낸드플래시는 이 투자의 결과물이다. YMTC가 독자 개발했다고 밝힌 적층 기술(엑스태킹)은 칩의 메모리 영역과 주변부를 별도로 만든 뒤 이 둘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칩 전체를 한 번에 만드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방식보다 비용과 시간이 훨씬 많이 든다.
SMIC의 7나노 공정도 여러 번의 반복 작업 끝에 완성됐다. SMIC 7나노 칩은 DUV(심자외선) 장비로 만들었다. 빛을 쏘아 미세 회로를 그리는 장비로, 최신 장비인 EUV는 인쇄 한 번으로 공정이 끝나는 반면 DUV로는 빛을 여러 번 쏘아야 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여러 번 씹은 격”이라고 했다. YMTC와 SMIC 기술은 중국으로 건너간 TSMC 출신의 대만 엔지니어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현재 SMIC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량멍쑹이다. TSMC에서 파운드리 핵심 기술을 개발한 그는 2011년부터 삼성전자 파운드리 임원급 연구위원을 맡았다. 이후 삼성전자의 14나노 공정 개발의 핵심 역할을 맡았지만, TSMC가 기술 유출 혐의 소송을 걸면서 2016년 삼성전자를 떠났다. 이후 그가 정착한 곳이 중국 SMIC이다.
◇수율 50% 미만, 사업성 떨어져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 같은 반도체 기술 개발 성과에 대해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SMIC와 YMTC는 반도체 수율(收率·생산품 대비 정상품 비율)을 공개한 적 없다. 하지만 SMIC 7나노 칩의 수율을 업계는 50% 미만으로 추정한다. 두 개 만들면 하나는 불량품이라는 의미다. TSMC와 삼성전자의 7나노 수율은 90% 이상이다. YMTC의 232단 낸드 수율은 알려진 내용이 없지만, 신용 평가사 무디스는 “중국이 사업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완전히 따라잡으려면 5년은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은 보여줬지만, 경쟁력 확보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자립에 성공했다는 중국의 선전 효과와는 별개로, 수많은 제약 속에서 어떻게든 해낸 중국의 저력만큼은 인정한다”며 “국내 업계도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1일 중국 정부가 조성한 반도체 투자 펀드는 창신메모리(CXMT)의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에 145억위안(약 2조7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낸드플래시 적층 기술
데이터를 저장하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성능과 용량을 높이는 기술. 단수가 높을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2015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48단 낸드플래시를 양산했다. 지난 8월 SK하이닉스는 321단 낸드 시제품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