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온택트헬스 사무실에서 만난 헤먼트 타네자 제너럴 캐털리스트 대표는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을 보장해주는 의료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기업가가 가장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산업 분야로 헬스케어를 꼽았다. /박상훈 기자

“현재 기업가가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분야를 꼽는다면 헬스케어(건강관리) 분야입니다.”

지난 3일 서울 서대문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온택트헬스의 사무실에서 만난 헤먼트 타네자(48) 제너럴 캐털리스트(General Catalyst·이하 GC) 최고경영자(CEO)는 “현행 의료 체계는 건강을 관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건강 문제나 질병이 생긴 뒤에야 도움을 주고 있다”며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건강을 보장하는 체계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가 20년 넘게 몸담은 GC는 미국 최대 벤처캐피털(VC) 중 한 곳으로 총 운용 자산 규모가 250억달러(약 32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제는 핀테크 공룡이 된 ‘스트라이프’, 미국 인기 소셜 미디어 기업 ‘스냅’, 글로벌 공유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 등에 초기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다. 타네자 대표는 최근 실리콘밸리 투자사인 마음캐피털그룹(MCG)과 아시아 시장을 돌며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다. 그는 “한국은 2000년대 들어 기술적으로 앞선 국가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그간 삼성과 LG 정도만 알았지만, 더 많은 기업이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시장을 살피러 왔다”고 했다.

타네자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의료 서비스가 얼마나 뒤처졌는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가령 의료기관 대부분은 원격진료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전자 의무 기록마저 조각조각 쪼개져 있어 모든 데이터를 한꺼번에 집계할 저장 공간이나 인구 집단별로 분석할 체계도 없었다. 그는 “2020년 의료 산업의 디지털화가 금융 산업과 비슷한 수준만 됐더라도 우리는 코로나와 맞서는 데 필요한 유용한 정보를 훨씬 더 많이 더 빠르게 모두에게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 헬스케어 분야에서 창업과 투자를 거듭하며 큰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2014년 공동 설립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리봉고’는 당뇨 같은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선보이며 인정받았고, 지난 2020년 미국 1위 원격의료 업체 ‘텔라닥’에 185억달러에 인수됐다. 디지털 의료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2017년 창업한 기업용 진료 앱 플랫폼 기업 ‘커뮤어’ 역시 의료 인프라 분야 선두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고, 올해에는 의료용 AI 모델 개발 스타트업 ‘히포크라틱 AI’ 투자를 주도했다.

타네자 대표는 플랫폼과 AI, 클라우드 컴퓨팅, 웨어러블 장치 등 각종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건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지속 확보해 분석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치료보다 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분야에서 앞으로 1000억달러 규모 업체 10~15곳이 생겨날 것”이라며 “현재 연간 3조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건강 관련 지출은 점차 축소되고, 이 돈은 새롭게 나타난 산업체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혁신의 저변에 AI가 있을 것이라 봤다. 인터넷처럼 AI가 범용 기술로 자리 잡으면서 결국 모든 회사가 AI 기업이 된다는 것이다. 타네자 대표는 “다만 AI 기술 개발 과정에서 기능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사회 양극화나 분열만 촉발할 수 있다”며 “기업의 AI 윤리 의식과 기준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GC는 이를 위해 AI 기업과 개발자가 따라야 하는 지침인 ‘AI 행동 강령(Code Conduct)’을 미국 정부와 함께 만들고 있다. 타네자 대표는 “AI 행동 강령은 이달 말 발표 예정”이라며 “아이디어는 참 많지만, 멀리 보지 못하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사라져버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