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지난 8월 출시한 최신 프리미엄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에 들어가는 부품의 절반가량을 중국산 제품으로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대상에 해당하는 7나노 공정의 5G 통신칩을 자체 개발, 생산한 데 이어 디스플레이 같은 스마트폰 핵심 부품까지 중국 제품으로 대체하며 기술 자급화에 큰 진전을 보인 것이다. 첨단 산업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강도 높은 통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3일 “전자기기 분해 조사 업체 포멀하우트 테크노솔루션즈와 함께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를 분해해 분석한 결과 중국산 부품 비율이 47%에 달했다”며 “이는 지난 2020년 출시한 메이트 40 프로(29%)보다 중국산 부품 비율이 18%포인트 오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3년 전 메이트 40 프로 부품의 19%를 차지하던 일본산 부품 비율은 메이트 60프로에서 1%로 줄었다. 같은 기간 한국산 부품 비중은 36%로 5%포인트 늘었고, 미국은 2%로 1%포인트 감소했다.
◇5G칩 이어 부품까지 중국산
화웨이 메이트60 프로에는 그동안 한국,일본 등이 우위를 가진 첨단 부품들이 중국산으로 대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화웨이는 기존 스마트폰에 LG디스플레이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장착했는데 메이트 60 프로에는 중국 BOE 패널을 탑재했다. OLED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 부품 가운데 단가가 가장 높다. 또 디스플레이 위에 입히는 터치 패널 부품도 미국 시냅틱스에서 중국 제품으로 바꿨다. 기존에 화웨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주요 첨단 반도체들은 화웨이의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하고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생산했는데 메이트 60 프로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중국 SMIC가 생산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메이트 60 프로에 중국 기업의 고성능 부품이 대거 탑재되면서 중국산 부품 총액(198달러)은 메이트 40 프로보다 90% 증가했다.
화웨이가 짧은 기간에 자국산 첨단 부품을 조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 사업이 있다. 화웨이는 지난 2019년 미 정부에 의해 블랙리스트(거래 제한 명단)에 오른 이후 한국, 일본·미국 기업으로부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미국 기술을 사용한 제품 공급이 끊겼다. 미 제재 확대로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업이 늘어나자 중국 정부는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생산 장비 국산화에 매년 수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해 기술 자급을 추진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이외의 첨단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키우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 8월 중국 AI 대기업 바이두에서 910B 어센드 AI칩 1600개를 수주받았다. 이 반도체는 화웨이가 AI반도체 시장의 80%를 차지한 미국 엔비디아에 맞서기 위해 개발한 칩이다. 화웨이는 지난달까지 이미 1000개를 납품했다. 전 세계 이미지센서 1위 기업인 일본 소니와 협력이 중단되면서 자체 이미지센서도 개발했다. 화웨이는 메이트 60 프로에는 삼성전자의 이미지 센서를 장착했지만, 내년 스마트폰 P70시리즈에는 자사가 개발한 CMOS 이미지 센서를 개발해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제재, 중국 기술 자급 앞당겼나
화웨이를 비롯한 최근 중국 테크 기업들의 첨단 기술 자립은 수율(收率·생산품 대비 정상품 비율)과 품질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가 역으로 중국의 첨단 기술 자립 속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에서 첨단 기술 사용을 막은 미국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기술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앞선 EUV(극자외선) 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았는데 중국은 이보다 한 단계 아래 단계 기술인 DUV(심자외선) 장비를 여러 차례 사용하는 방식으로 7나노 칩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중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의회는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 기술을 수출 통제 범위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반도체 패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기술 통제 노력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것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중국의 기술력을 훼손하는 데 실패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 제재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