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를 찾아 정부 행정전산망 현장 점검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지난 17일 전국적인 행정망 마비 사태를 촉발한 새올행정시스템은 연 매출 200억원 규모의 중소 IT 업체가 구축,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올시스템 중단 이후 전국 주민센터는 물론 정부 온라인 민원 사이트 정부24까지 마비되며 전대미문의 전국 행정 공백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3월 대국민 사법 서비스가 중단된 법원 전산망, 지난 6월 개통 직후 접속 오류가 발생한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 등 올해 장애가 발생한 주요 공공 전산망 모두 중소기업이 개발했다.

이 때문에 IT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 제한 등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13년 정부는 공공 IT 서비스 시장을 삼성SDS·LG CNS·SK㈜ C&C 등 대기업이 독식한다는 이유로 자산 규모가 5조원이 넘는 대기업의 공공 서비스 참여를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공공이 나서 중견·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를 키우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당초 의도와 달리, 소프트웨어 분야 대·중소기업 기술력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20년 4월 코로나 사태로 초·중·고교 등교가 막히자 교육부와 EBS(교육방송)는 연 매출 100억원 안팎의 중소기업 두 곳에 온라인 수업 시스템 개발을 맡겼다. 하지만 로그인 오류와 먹통 현상이 나타나 일주일 넘게 학생 수백만 명이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2021년 중소 업체가 개발한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도 오픈과 동시에 마비됐다. 결국 이들 사태 모두 정부 요청으로 대기업 기술진이 투입되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됐다.

그래픽=이철원

정부는 공공 전산망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국가 안보’나 ‘신기술 활용’ 등에 한해 중견, 중소 기업과 컨소시엄을 꾸린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뒀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 후려치기로 인한 수익성 악화, 대기업에만 사고 책임을 전가하는 관행 등으로 대기업 참여는 해마다 줄고 있다. 전산망 구축 경험이 많은 대기업이 배제되면서 규모가 영세한 업체들에 사업을 나눠 주는 ‘쪼개기 발주’가 남발되고 있다.

한 IT 서비스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은 컨소시엄을 이루더라도 다른 중소기업의 구축 사업에 개입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전산망 개통 전에 문제를 발견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정부 사업에 참여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국정감사장에 불려가며 다 뒤집어쓰는데 누가 참여하려 하겠나”라고 말했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 간 전산망 유지·관리 체계가 달라 생기는 문제 개선도 시급하다. 과거 통합전산센터 한 곳에서 행정망을 관리했던 것과 달리 현재는 각 지자체에서 별도로 행정 전산망을 관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스템 자체는 한 군데에서 설계했더라도 유지, 보수와 관련된 부분을 모든 기관이나 지자체가 제각각 발주하고 관리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해도 파악이나 해결이 쉽지 않다”고 했다.

정부가 별도 예산 배정 없이 업체 측에 소프트웨어 추가 개발 등을 요구하는 이른바 ‘과업 변경’ 관행도 도마에 오른다. 정부 추가 요청에 대응하느라 발생하는 추가 인건비와 시스템 개통 시기 지연으로 인한 비용은 해당 업체가 부담해야 한다. 대형 공공 정보화 사업에 참여했다가 비용 증가로 파산 위기에 몰린 중소 업체들도 나오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국가 인프라를 운영하면서 기술력과 관리 능력이 입증된 기업을 배제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