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메타의 ‘기초 AI 연구소(FAIR)’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에서 만난 얀 르쿤 메타 수석 AI 과학자(부사장) 겸 뉴욕대 교수는 “올 들어 전에 없는 AI 열풍이 불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 것이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지만, 사람에 견줄 만한 AI를 개발하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하다”고 했다. “적어도 3~4건의 획기적인(groundbreaking) 기술 돌파를 해야만 인간 같은 AI가 나올 수 있는데,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먼 미래의 AI 인류 지배보다 실질적인 위협은 AI 기술이 몇몇 빅테크, 특히 미국 서해안의 일부 기업에 집중되는 것”이라며 “AI에 대한 공포가 촉발한 규제들로 이미 몇몇 국가에선 AI의 오픈 리서치(개방적 연구)가 불법이 되었는데, 기업·학계 간의 공동 연구를 막을수록 작은 기업들이 몰락하고 기술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했다.
◇”챗GPT, 아직 미숙”
르쿤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와 함께 ‘AI 4대 천왕’으로 불리는 석학이다. 2013년 FAIR 설립 당시 초대 소장을 지낸 그는 2018년 힌턴·벤지오 교수와 함께 ‘컴퓨터과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최근 AI의 위험성을 두고 벌어진 ‘AI 철학 논쟁’에 있어 이들 석학의 견해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힌턴과 벤지오가 AI가 인류에게 실존적 위험이 될 것으로 보는 ‘두머(Doomer·파멸론자)’인 반면, 르쿤은 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인간을 도와야 한다는 ‘부머(Boomer·개발론자)’로 평가받는다.
르쿤은 이날 “세상을 놀라게 한 챗GPT도 AI를 오래 연구해온 사람들에겐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구글·메타 등도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기술로, 아직 미숙(premature)하다”고 했다. 챗GPT는 방대한 언어를 학습해 특정 단어에 뒤따라 나올 단어를 예측해 문장을 만드는 것이 핵심인데, 복잡한 인간의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르쿤은 “인간의 지식은 생각보다 언어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며, 매우 다층적이고 복잡한 인식의 종합물”이라며 “AI가 대화를 잘한다고 인간의 지능을 갖췄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전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인간보다 뛰어난) 일반인공지능(AGI)이 5년 내 나올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르쿤은 “현재 진행되는 AI 전쟁에서 황 CEO는 무기(AI 반도체)상이고, 전쟁이 계속되길 원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며 “현실적이진 않다”고 했다.
AI의 적극적 활용을 주장하지만 르쿤 역시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1920년대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기 엔진이 개발되기 전 비행 사고가 무섭다고 엔진 개발 자체를 막지 않았듯이, AI도 선제적 규제보단 출시되는 제품에 맞춰 세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FAIR, 다양한 AI 연구 공개
르쿤이 이끄는 FAIR는 이날 이미지·음성·영상 등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AI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메타의 VR·AR(가상·증강현실) 사업에 언제든 탑재될 수 있는 기술들이다. 100개 언어를 36개 언어로 동시통역할 수 있는 ‘심리스 M4T’ 모델이 탑재된 메타의 VR 기기 ‘퀘스트 3′를 착용하자, 스페인어로 진행된 발표가 영어 자막과 영어 음성으로 실시간 통번역됐다. AI는 화자의 음성과 말투까지 유사하게 따라 했고, 지연 시간은 약 2초에 불과했다.
카메라가 사용자의 동작을 정밀하게 인식하는 ‘Ego-Exo 4D’ 기술이 적용된 퀘스트 3에선 실시간으로 딸기 음료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AI 도우미가 나타났다. AI 도우미가 안내하는 대로 딸기, 민트, 라임 등의 재료를 배합하고 섞자 어느새 음료가 완성됐다. 크리스틴 그라우먼 FAIR 과학자는 “AI가 카메라 영상을 정확하게 판독해 인간의 동작을 배우고, 이를 다시 사람에게 가르쳐줄 수 있게 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며 “AI가 테니스 같은 스포츠의 정확한 동작을 가르치는 기술도 개발 중”이라고 했다.
☞메타 FAIR
2013년 설립돼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은 메타의 기초 인공지능 연구소(Fundamental AI Research·FAIR). AI와 관련된 모든 주제를 다루며, 최신 기술을 소셜미디어·VR(가상 현실) 등 실제 서비스에 접목하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얀 르쿤 뉴욕대 교수가 연구소 개소에 직접 참여하며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