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전동 스쿠터’라는 신(新)시장을 개척했던 미국 ‘버드(Bird)’가 창업 6년여 만에 운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파산 절차를 밟게됐다. 버드는 코로나 이전에 스타트업 업계에 불었던 공유 경제 열풍에 힘입어 한때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반열에 올랐던 업체다. 테크 업계에선 “코로나 이후 사업성 하락과 잦은 안전사고로 전동 스쿠터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되며 수많은 패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짧았던 ‘전동 스쿠터’ 전성기
20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마이애미에 본사를 둔 버드는 플로리다 파산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서를 제출했다. 파산 신청 이유로 ‘현재 직면하고 있는 100건 이상의 소송과 관련된 상당한 소송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대부분 스쿠터 이용자의 사고와 관련된 상해 소송이다. 이와 함께 코로나 이후 다른 사람이 썼던 제품을 공유해서 쓰려는 수요가 급감하며 스쿠터 사용량이 크게 떨어진 것도 문제로 꼽혔다.
버드는 차량 공유 업체 우버 출신인 트래비스 밴더잰든이 지난 2017년 설립했다. 세쿼이아 캐피털 등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받으며 빠르게 글로벌 350여 도시로 사업을 확장했고,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는 25억달러(약 3조2600억원)까지 기업 가치가 치솟았다.
버드의 사업은 2020년 코로나 확산과 함께 휘청였다. 시민들의 외출이 급격하게 줄면서 스쿠터 사용량이 급감했고, 어느 정도 이동 제한이 풀린 후에도 공공장소에 세워져 있는 스쿠터를 사용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재정 상황이 나빠지자 회사는 지난 2021년 스팩(SPAC·기업 인수 목적 회사) 합병 방식으로 미 증시에 상장했지만, 6개월 뒤 주가는 90% 폭락했다. 결국 회사는 지난 9월 상장폐지됐고, 2개월 만에 파산 보호 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9월 기준 누적 손실만 16억 달러를 기록한 회사는 파산 절차를 통해 자산 매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전동 스쿠터 공유 사업의 전성기는 지났다’고 본다. 본래 공유 경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유휴 자원을 공유해 부가 이익을 창출한다는 것인데, 전기 스쿠터는 원래 없던 스쿠터를 대량생산하고 이를 공유하며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사업을 확장할수록 투자금이 늘어나고,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수익은 낼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갖은 안전사고로 지난 8월 프랑스 파리가 전동 스쿠터를 전면 퇴출했고, 미국 샌디에이고는 도심에서 운영되는 전동 스쿠터 수를 1만1000대에서 8000대로 줄이는 등 규제도 본격화됐다. 사업 확장은커녕 축소해야만 하는 시장이 된 것이다.
우후죽순 생겨났던 유사 업체들도 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독일 업체 티어는 사업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달 말 전체 인력의 22%를 감원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180명, 올 1월 100명을 해고한 후 또 한 차례 대규모 감원에 나선 것이다. 또 다른 미국 업체인 마이크로 모빌리티 닷컴(옛 헬비즈)은 20일 나스닥에서 상장폐지됐다. 최소 1달러의 주가를 유지 못 하는 등 나스닥 상장에 필요한 최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게 이유였다.
◇사업 전환하는 국내 스쿠터 기업들
국내 공유 킥보드 업체들 역시 사업을 전환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국내 전동 킥보드 공유 서비스 시장은 2018년 9월 올룰로가 ‘킥고잉’ 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하며 매년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2021년 헬멧 착용과 운전면허 등이 의무화되면서 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국내 업체들은 규제가 적은 전동 자전거로 사업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전동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로 분류돼 면허나 헬멧 의무 등이 없다. 이 때문에 킥고잉, 스윙, 지쿠 등 업체들은 가맹점을 모집하는 등 전동 자전거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수많은 공유 전동 스쿠터 업체 중에선 미국 ‘라임’이 유일하게 흑자를 내며 승자로 남게 됐다”며 “하지만 경쟁사들이 사라진 원인이 시장 자체에 있기 때문에 라임 역시 장기적인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