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와 교외 11개 카운티를 합친 메트로 애틀랜타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신규 사업자 등록 신청이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전 3년보다 75% 늘었다. 일자리는 2020년 이래 5.4% 늘었고, 새로 유입된 인구 수도 급증했다. 애틀랜타 지역위원회(ARC)는 “민·관의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면서 창업과 일자리가 늘어났고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고 했다. 같은 기간 앨라배마주의 메트로 모바일 지역은 신규 사업자 등록 신청이 127%, 뉴올리언스와 그 주변 지역은 59% 증가했다. 반면 기존 스타트업 중심지였던 시애틀과 뉴욕은 각각 20%, 보스턴은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스타트업과 기술 분야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를 벗어나 미국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팬데믹을 거치면서 미국 연안 대도시를 따라 형성된 스타트업 중심지는 약화된 반면 스타트업 불모지로 알려진 중서부 내륙 지역 창업이 급증하고 있다.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과 물가가 급등하고, 화상회의와 원격 근무가 확산되면서 지역에 구애를 받지 않는 창업자와 구직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스타트업이 몰려 있는 한국도 비수도권 지역의 기업·일자리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력도, 돈도 전역으로 퍼진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기술 분야 인재들은 미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실리콘밸리,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DC 같은 곳에서 일하는 기술 분야 인력 비율은 줄어들고 있지만 덴버, 솔트레이크시티, 마이애미, 내슈빌 같은 도시에선 오히려 늘어났다. 실리콘밸리는 2022년부터 2023년까지 2년 동안 약 1400명의 기술 분야 인력을 잃은 반면 댈러스-포트워스 지역은 3만 개의 기술 일자리가 생겼다.
테크 업계 관계자와 경제 전문가들은 기술 인력의 이동이 스타트업 창업 트렌드 변화 때문으로 분석한다. 팬데믹 기간 사람들이 창업과 이직을 고민할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달라진 근무 환경을 경험하면서 물가가 비싸고 치안이 나쁜 대도시 대신 삶의 질이 높거나 세율이 낮은 지역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8.84% 법인세와 13.3% 소득세를 걷어 미국 내 최고 수준 주(州) 세금을 부과하지만 플로리다주, 텍사스주는 개인소득세가 없다. 실리콘밸리에서 마이애미로 옮기면 실수입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동·서부 연안에 집중됐던 돈의 흐름도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실리콘밸리 투자액은 2012년 이래 가장 적었고 벤처투자 상승률은 2020년에 비해 19%에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마이애미와 휴스턴, 오스틴의 벤처투자 상승률은 각각 278%, 91%, 77%였다.
WSJ는 “스타트업과 기술 인재가 분산되면서 미국 지역 사회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지역 투자자들이 새로운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 기업이 성장해 다른 지역 기술 기업을 유치하고 창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인재 클러스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스타트업 3분의 2가 서울
한국은 지방 경쟁력 강화와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성과는 거의 없다. 지난달 14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6년 사이 외부 투자를 유치한 벤처·스타트업 3곳 중 2곳은 서울에 있었고, 서울 안에서도 강남권에 유독 몰렸다. 서울에서 투자를 유치한 업체 중 절반 이상(53.6%)은 소재지가 강남구 또는 서초구였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상당수 인력이 서울에 있고 벤처캐피털 같은 투자 기관이 서울에 소재지를 두고 있는 점도 스타트업들의 ‘서울 쏠림’ 현상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급성장하는 미국 도시들은 실질적으로 인센티브가 될 수 있는 정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와 지자체도 스타트업이 서울에 머무를 때의 장점을 상쇄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강력한 지역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