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인도 신생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크루트림이 인도 최초의 다국어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공개했다. LLM은 문서와 그림 등 다양한 데이터를 모은 AI로 챗GPT 같은 서비스의 토대가 된다. ‘인도만의 인공지능’이라는 모토를 내세운 이 LLM은 인도에서 사용하는 20가지 언어를 이해하고 다양한 인도 내 민족의 종교적·문화적 특성을 반영했다. 챗GPT나 구글의 바드처럼 영어로 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 AI가 아니라 완전히 인도에 맞춰진, 인도인을 위한 AI인 것이다. 크루트림 창업자 바비시 아가르왈은 “챗GPT를 비롯해 영어를 우선시하는 다른 AI들은 우리의 문화, 언어, 정신을 담아낼 수 없다”고 했다.
미국 빅테크 중심으로 AI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세계 각국이 AI 주권을 지키려는 ‘AI 국가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기술이나 자본을 갖춘 국가들은 AI 기술이 다른 국가에 뒤처지거나 종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AI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해 영국, 프랑스, 독일,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6국 정부가 총 400억달러(약 52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AI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각국이 AI 주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난 1년간 AI 개발이 급속도로 빨라지면서 기술, 일자리, 교육, 문화 등 전방위적인 영향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AI 주도권을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해외 기업에 뺏긴다면 경제나 안보에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챗GPT, 바드 등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AI 챗봇은 영어와 미국 관점의 문화적, 언어적 우위를 반영하고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AI의 다양성 부족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AI 기술이 소수 미국 기업 전유물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생겼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국어 시장을 겨냥한 AI 개발이 한창이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는 지난해 8월 한국어 데이터 다량 수집을 위해 30여 기업이 참여한 1T 클럽을 발족했다. 또 다른 AI 스타트업 뤼튼이 개발한 한국어 기반 LLM 애플리케이션(앱)은 사용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