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1월 28일 아랍에미리트(UAE)는 국가가 지원하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AI71을 설립해 대규모 언어 모델(LLM) ‘팰컨’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기관 아부다비 첨단기술 연구위원회는 지원 이유에 대해 “AI71이 오픈AI와 같은 기업과 세계에서 경쟁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2. 지난달 창업 7개월 차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이 4억달러(약 5224억원) 규모 투자를 받았다. 기업 가치는 2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어 기반 AI를 만드는 이 회사에 대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스트랄에 브라보, 프랑스의 천재”라며 극찬했다.

AI가 기업 간 경쟁의 범주를 벗어나 국가 간 경쟁으로 확전되고 있다. 현재 AI 산업은 거대 자본과 우수 인력을 앞세운 미국 소수 빅테크에 집중돼 있다. 세계 각국은 AI가 모든 것을 바꾸는 시대에 AI를 빅테크에만 의존할 경우 산업은 물론 정치, 노동, 안보 같은 분야까지 모두 빅테크에 잠식당할 우려가 있다고 본다. 영어로 만들어지고 서구 가치관이 주입된 빅테크 AI는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빅테크 AI를 활용하면 비영어권 국가의 언어와 문화가 폄하되거나 소외되면서 심각한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기술 경쟁을 벌이는 중국은 물론 중동, 유럽도 정부가 나서 자국어 AI 개발에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자국어 AI가 선택이 아닌 생존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중국·중동 앞다퉈 뛰어들어

중국은 자국 AI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갈수록 악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이 미국 빅테크 AI를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시나리오”라며 “중국은 자국 AI를 개발하는 것 이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중국 정부는 기업이 갖고 있는 모든 상업적 데이터를 사고파는 데이터 거래소 설립을 장려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풀었다. 현재 중국 내 데이터 거래소만 50곳에 이른다. 풍부한 데이터를 소유한 대기업의 전유물이었던 AI 산업에 스타트업이 뛰어들 기반을 닦아준 것이다. 외국계 증권사인 CLSA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중국은 전 세계 LLM의 40%에 해당하는 130여 개를 보유, 1위 미국(50%)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도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두 나라 모두 AI 주권 확보를 목표로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사우디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교 AI 과정과 UAE 아부다비의 모하메드 빈 자예드 AI 대학교는 UC버클리와 카네기멜런대 등에서 스타 교수를 영입해 아랍어 AI 개발에 나섰다. UAE가 투자한 AI 스타트업 AI71이 처음 내놓은 개방형(오픈소스) LLM ‘팰컨’은 빅테크인 메타의 오픈 소스 LLM ‘라마 2′와 견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은 일본·동남아에서 기회 노려

영어 기반의 빅테크 AI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각국의 움직임은 한국 인터넷 기업과 스타트업에 기회가 되고 있다. 중동·동남아 등에서는 빅테크 AI보다는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의 AI 기술을 활용해 자국어 AI를 개발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AI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한국어 AI를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빅테크와는 다르게 다양성을 중시하는 방식의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각 나라 사정에 맞는 AI를 개발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했다.

네이버는 대만·태국·일본에서 AI 서비스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기업 맞춤형 AI를 제작해 판매하는 스타트업 올거나이즈는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을 비롯해 일본 2위 통신사 KDDI 등을 고객으로 유치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기업들이 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 고객을 위한 AI도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인공지능 주권(AI sovereignty)

인공지능 주권(AI sovereignty)은 해외 기업이나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국가별로 자체 언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모델을 갖춘 것을 의미한다. AI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주적인 AI(sovereign AI)가 필요한데, 이는 자국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국 언어와 문화로 학습하고 자국 규제가 가능한 AI 기술을 의미한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AI 주권을 지키려는 세계 각국의 움직임을 ‘AI 국가주의(AI nationalism)’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