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창업가를 위한 나라입니다. 유행이 빠른 데다 기술 친화적이라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했을 때 한 달이면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죠.”
지난달 28일 서울 보광동에서 만난 마이크 킴(40·한국명 김준)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아시아·태평양 및 한국 총괄은 “돈과 시간 모두 부족한 스타트업 입장에선 한국이 최고”라고 했다. 그는 “배우와 음악, 패션, 음식 등 실제 요즘 해외에선 ‘메이드 인 USA’보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 더 매력을 느낀다”면서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 진출하기 좋은 시기”라고 덧붙였다.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는 세계 최대 인터넷 업체인 구글의 창업 지원 센터다. 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차고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세계적인 빅테크로 성장한 경험을 나누고,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취지로 세계 곳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아시아 지역 최초로 들어선 서울 캠퍼스는 6개월마다 선정한 스타트업에 사무실 공간과 구글의 각종 기술 및 소프트웨어 등을 지원해 주고 투자자 소개와 해외 진출도 돕는다. 국내 스타트업 지원 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해 말 실시한 창업자 조사에서 가장 입주·활용하고 싶은 창업 지원 센터로 꼽히기도 했다.
김 총괄은 “핀다(대출 비교 플랫폼) 같은 스타트업 역시 직원이 5명에 불과하던 2016년 구글 캠퍼스에 들어왔다”며 “당시 이혜민 핀다 대표를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등지에 보내 500스타트업 같은 미국 투자 기관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도왔다”고 말했다. 핀다 기업 가치는 현재 3000억원이 넘는다. 핀다처럼 서울 캠퍼스를 거쳐 간 국내 스타트업은 130곳이 넘는다. 이 기업들이 유치한 누적 투자액은 7000억원이 넘는다. 국내 최초 온라인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를 선보여 카카오에 1800억원에 인수된 그립 역시 구글 캠퍼스 출신이다.
김 총괄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민 2세로 한국에 오기 전까지 미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았다. 대학을 마친 직후인 2007년 창업했지만, 당시 미국에서 터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사업을 접었다. 첫 도전은 실패였지만, 그 뒤로는 징가와 링크드인 같은 굵직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의 탄생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는 2014년 갑자기 한국행을 택했다. 김 총괄은 “당시엔 한국에 별 관심도 없었고, 한국말도 거의 못 했다”며 “우연히 한 킴 대표(알토스벤처스)가 자기 포트폴리오 기업 대표들을 소개해 줬는데 그중 한 명이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였다”고 했다. 김 대표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던 두 사람은 사무실 근처 석촌호수 주변을 돌며 공감대를 키웠다. 김 총괄은 “당시 실리콘밸리에선 오로지 엑싯(투자금 회수)이나 IPO(기업 공개)를 언제 할 건지가 주된 관심사였는데, 당시 김 대표는 ‘막 태어난 딸이 내 나이가 됐을 때 행복한 회사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데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김 총괄은 “비전을 가진 사람은 위기가 왔을 때 포기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김 총괄은 스타트업 투자 외에도 한국에 기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2015년부터 노인 빈곤층에 직접 만든 도시락을 전달하는 봉사 단체 ‘코리아 레거시 커미티’를 설립해 매주 400~500개의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김 총괄은 “우아한형제들에 다닐 때 잠실역 차가운 바닥에서 껌을 파는 할머니를 보고 돕고 싶다는 생각에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며 “미국에선 젊은 사람들의 봉사 모임이 많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게 참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 젊은이 20여 명과 함께 지금까지 전달한 도시락은 2만개에 육박한다. 김 총괄은 “제가 한국을 사랑할 기회를 얻었듯, 한국 젊은이들 역시 다른 이를 사랑할 기회를 더 많이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