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 실리콘밸리 자택. /교토 연합뉴스

잇따른 투자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국에서 주택 담보 대출까지 받았다. 한때 세계 투자 업계를 쥐락펴락했던 손 회장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14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는 손 회장이 실리콘밸리의 최고급 저택을 담보로 9200만 달러(약 1212억원) 대출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FT는 “손 회장이 최근 몇 년간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의 지분부터 중국 전자상거래 회사 알리바바 지분까지 모든 것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블룸버그가 발표한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손 회장은 지난해에만 11억달러 규모 손실을 봤다.

그래픽=김성규

◇과시하기 위한 집까지 담보

손 회장이 담보로 잡힌 저택은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에 있는 9에이커(약 3만6422㎡), 4층 높이 건물로 엘리베이터, 볼링장 등을 갖추고 있다. 2012년 12월 손회장이 사모펀드 헬만앤프리드먼의 공동 설립자인 툴리 프리드먼으로부터 1억1750만달러에 사들였다. 미국 주거용 부동산으로는 사상 최고가 거래였다. 재산세 기준 평가액의 거의 6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이 지역 부동산 중개인들은 이 저택의 현재 가치가 7500만 달러에서 9000만 달러 수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손 회장의 저택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데다 나무와 울타리에 가려져 있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FT에 따르면 손 회장이 이 저택에 머물 땐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투자를 받기 위해 이곳을 드나들었다. 로봇 피자 스타트업 주메(Zume)의 창업자는 트럭 한 대를 언덕 위로 몰고 올라가 손 회장에게 갓 데운 피자를 건네기도 했다. 이후 소프트뱅크는 주메에 3억7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저택을 방문한 한 실리콘밸리의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는 FT에 “소파부터 조명기구까지 모든 게 비싸 보였다”며 “과시를 하기 위한 집 같았다”고 했다.

FT는 손 회장이 2019년 일본 미즈호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이 저택을 담보로 제공한 문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공유오피스 업체 위워크의 기업 공개(IPO)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였다. 손 회장은 주택 담보 대출 외에 다른 개인 대출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의 두 번째 비전 펀드인 라틴아메리카 펀드와 단기 헤지펀드인 SB 노스스타에 투자하기 위해 소프트뱅크에 개인적으로 돈을 빌렸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손 회장의 개인부채 규모는 50억달러를 넘어섰다.

◇손류(孫流), 이제 안 통하나

손 회장은 알리바바·우버 등 쟁쟁한 기업의 초기 투자로 막대한 투자수익을 올린 ‘투자의 귀재’로 불렸다. 하지만 중국 기술기업 규제, 미·중 갈등, 기술주 하락 등으로 소프트뱅크 산하 벤처캐피털(VC)인 비전펀드가 투자한 회사들의 주가가 폭락하며 막대한 손실을 냈다. 소프트뱅크는 4분기 연속 수조원씩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손류(孫流)로 불렸던 손 회장의 투자 방식이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손 회장은 적자를 무릅쓰고 특정 기업에 투자금을 쏟아부어 경쟁자를 없애고 관련 시장을 장악한 뒤 기업 가치가 오르면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매년 큰 적자를 내던 쿠팡에 2015년부터 3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소프트뱅크는 2021년 3월 쿠팡 상장 이후 지분 가치 상승 효과를 봤지만 이후 주가가 크게 하락하자 그해 9월 2조원가량의 쿠팡 지분을 매각했다. 2016년부터 공유 사무실 스타트업 위워크에 169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파산신청을 하면서 소프트뱅크에 큰 타격을 줬다.

소프트뱅크는 투자처의 보유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고, 새로운 투자처에 자금을 넣는 돌려막기식으로 투자를 해왔지만, 이 방식도 유지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손 회장은 2016년 320억 달러에 ARM을 인수하면서 회사가 5년 안에 5배 성장할 것이라 자신했지만, 12일(현지 시각) 기준 ARM의 기업가치는 717억7000만달러로 손 회장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