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군림하며 테크 산업 전성시대를 이끈 애플이 연초부터 갖은 굴욕을 겪고 있다. 인공지능(AI)을 앞세운 마이크로소프트(MS)에 시가총액을 추월당하며 체면을 구긴 데 이어, 핵심 수입원인 하드웨어 판매 부진으로 이례적인 할인 행사까지 여는 처지가 됐다. 테크 업계에서는 “‘무적’으로 여겨지던 애플의 지위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첫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서 이례적 할인전 나선 애플
15일(현지 시각) 중국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는 ‘신춘(新春)맞이 할인’이라는 코너가 신설됐다. 설날을 앞두고 오는 18일부터 21일까지 아이폰부터 맥북·에어팟·애플펜슬까지 다양한 제품을 할인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애플은 자사 제품에 대한 공식 할인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회사다. 견고한 ‘팬층’을 보유한 만큼, 스스로 몸값을 낮추지 않는 것이 프리미엄 브랜드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자신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례적인 공식 할인은) 중국에서 애플이 직면한 어려움이 돋보이는 결정”이라고 했다.
애플 중국 홈페이지에 따르면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 15 시리즈를 비롯한 일부 아이폰 제품은 최대 500위안(약 9만3000원) 할인이 적용된다. 기종에 따라 할인율이 6~8% 수준이다. 맥북의 경우 최대 800위안(약 14만8000원)을 깎아준다. 중국 IT 매체 자커(ZAKER)는 “할인 전에 기기를 구매한 고객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애플은 1월 4일 이후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은 할인가만큼 환불해주기로 했다”고 했다. 다만 할인 판매 수량에는 기기별로 제한이 있다.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최대한 고객들의 관심을 끌려는 애플의 전략”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애플의 할인 행사는 중국에서 아이폰 신제품의 판매 부진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 정부가 공무원의 아이폰 사용을 금지한 가운데, 화웨이·샤오미 등 자국 스마트폰에 대한 ‘애국 소비’ 열풍이 불면서 아이폰의 지난 4분기 중국 내 판매량은 전년 대비 10.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샤오미 판매량은 전년 대비 38.4%, 화웨이는 79.3% 늘었다. 아이폰에 이어 맥북·아이패드 등 애플 기기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며 주가가 하락한 애플은 지난 14일 시가총액 세계 1위 자리를 MS에 내줬다.
◇특허 분쟁도... 비전 프로, 반전 카드 될까
애플은 특허 분쟁에도 시달리고 있다. 1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은 애플워치 신제품에서 특허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송에 휘말린 기술을 포기하겠다는 신청서를 최근 미 세관 당국에 제출했다. 애플워치는 지난해 말 ‘혈중 산소 측정’ 기술이 타사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받고, 중국에서 전량 제조하는 애플워치의 미국 수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애플워치 판매를 계속하기 위해 혈중 산소 측정 기술을 제거하는 고육지책을 선택한 것이다.
애플은 다음 달 2일 출시되는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애플이 오랜만에 발표하는 신제품인 만큼, 고객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 전망은 회의적이다. 비전프로의 가격은 256GB(기가바이트) 저장 용량 기준 3499달러(약 460만원)에 달한다. 작년 6월 출시된 메타의 MR기기 ‘퀘스트3′ 가격의 5배가 넘는다. 해외 IT 매체와 시장조사 업체들은 애플 비전프로의 초기 생산 물량이 6만~8만대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본다. 블룸버그는 “비전 프로는 MR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의 거부감, 비싼 가격, 2시간으로 제한된 배터리 성능과 복잡한 제조 과정 등 여러 이유로 초기에 성공을 거두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개발하고 있는 더 가볍고 저렴한 비전 프로 2세대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