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 민간에 이전하고, 이 과정에서 우수 인력까지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와 민간이 함께 산업을 육성하는 1970~1980년대식 민관 파트너십 전략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첨단 반도체 칩 제조 기술의 연구·개발(R&D) 지원을 위해 450억엔(4018억원)을 투자한다고 최근 밝혔다. 투자의 중심에는 지난해 설립한 ‘최첨단 반도체 기술센터(LSTC)’가 있다. LSTC는 나노 기술, 재료,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개발해 라피더스의 반도체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 조직이다. 라피더스는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를 따라잡기 위해 도요타와 소니, 소프트뱅크 등 일본 대표 8개 기업이 모여 설립했다. 일본 정부는 LSTC를 해외 연구원 및 기업들과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 일본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반도체 기술 허브’로 만들 계획이다. 시미즈 히데미치 경제산업성 국장은 “LSTC에서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민간 부문이 수행하기는 힘든 연구·개발을 아웃소싱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2㎚(나노미터) 반도체 제조 기술은 물론 AI를 지원하는 반도체 설계까지 포함된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1970년대 일본은 민관 연합 기구를 만들어 후지쓰, NEC 등을 키워내며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을 앞섰다”면서 “기술 기반이 거의 없는 라피더스 육성을 위해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도 50억달러(약 6조6000억원)를 투자해 국립 반도체 기술진흥센터(Natcast·냇캐스트)를 최근 출범시켰다. 냇캐스트는 첨단 반도체 기술 연구와 시제품 제작 등을 맡으며 미국의 반도체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핵심 기관 역할을 맡는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정부와 업계, 학계가 모여 기술을 개발해 미국이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민관 파트너십”이라고 했다. 냇캐스트의 모델은 미국이 1987년 일본 반도체 산업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세마테크(Sematech)이다. 당시 2억달러가 투자된 세마테크는 다양한 연구 성과와 인력 양성에 기여하며 퀄컴 같은 반도체 기업을 키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