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엔비디아가 14일(현지 시각) 나스닥 상장 25년 만에 미 증시 ‘빅3′ 기업이 됐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며 엔비디아의 주가가 끝을 모르고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반도체 기업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달러 선을 넘었던 엔비디아가 2조달러 고지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엔비디아 주가는 전날 대비 2.46% 상승한 739달러에 마감하며 시총 1조8253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날 미 증시 시총 4위 기업이었던 아마존(1조7760억달러)을 넘어선 데 이어 하루 만에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1조8200억달러)까지 추월했다. 글로벌 시가총액 1·2위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3조420억달러)와 애플(2조8430억달러)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지만, 주가 상승 추이를 감안하면 글로벌 시총 3위 기업인 사우디아람코(2조620억달러)는 조만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 처리 전문 기업 엔비디아, AI 거물로
엔비디아는 반도체 기업 AMD에서 반도체 디자이너로 일하던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이 1993년 그래픽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커티스 프리엠, 전자기술 전문가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함께 공동 창업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세계적 기업에서 일하던 아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자 젠슨 황의 어머니는 “다시 취업이나 하라”고 꾸짖었다. 마땅한 밑천이 없었던 창업자 세 사람은 미국 레스토랑 체인 ‘데니스(Denny’s)’에서 4시간 동안 커피 10잔을 주문하며 사업을 구상했고, 음식을 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식당 뒤편 방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젠슨 황이 주목한 것은 점점 정교해지는 PC 그래픽 시장이었다. 평소 게임을 즐기던 그는 PC 기술이 발전할수록 3차원(3D) 그래픽을 빠르게 처리하는 반도체가 중요해질 것으로 확신했다. 시장을 앞서간 그의 구상은 창업 초기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하며 난항을 겪었지만, 1997년 ‘NV3′이라 불리는 3D 그래픽 처리 장치를 내놓으며 업계에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엔비디아는 1999년 지금의 엔비디아를 있게 한 인기 시리즈 ‘지포스’ 제품군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같은 해 나스닥에 상장했다. 엔비디아는 이후 수십 년간 게임용 그래픽 처리 장치(GPU)라는 틈새 시장에서 선두 기업의 위치를 지켰지만, 여전히 구글·아마존·애플 등 주요 빅테크에 비해선 대중성과 수익성 모두 크게 떨어졌다.
반전은 GPU가 새로운 분야에 활용되면서 시작됐다. 고품질 3D 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컴퓨팅 성능과 속도를 크게 끌어올린 GPU가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고 운용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반도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엔비디아의 새로운 전성기가 시작됐다. 엔비디아는 GPU 기술을 기반으로 AI 반도체 H100, A100을 출시했고 이 제품들은 현재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구글·아마존 같은 빅테크의 AI 서비스는 물론, 각국 정부가 주도하는 수퍼컴퓨터·데이터센터 구축에도 엔비디아 반도체가 필수품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고성능 AI 반도체인 H100의 경우 개당 가격이 3만달러까지 치솟았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는 성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함께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같은 서비스 역시 타사를 압도한다”면서 “한번 엔비디아 제품을 쓰기 시작하면 타사 반도체로 바꾸기 힘든 이유”라고 말했다.
경쟁사인 AMD와 여러 스타트업이 고성능 AI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80% 이상으로 절대적이다. 최근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자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7조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자체 AI 반도체 제조에 나서고 있지만, 당분간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투자 열기 치솟지만... ‘유의해야’
다만 투자 전문가들은 엔비디아가 유망한 것은 맞지만, 최근의 급격한 주가 상승을 보고 맹목적으로 투자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로이터통신은 “시장은 엔비디아를 AI의 왕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오는 21일 공개될 분기 실적에서 시장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호실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급상승한 주가가 단기간 급락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