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살인자 ㅇ난감’에서 배우 손석구의 어린 시절로 등장한 아역 배우가 손석구와 너무 닮았다는 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손석구의 쌍꺼풀 없는 눈과 한쪽 얼굴을 구기며 웃는 모습까지 똑같다. 관객들이 아역 배우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이창희 감독은 지난 14일 “손석구씨의 어린 시절 사진 여러 장을 이용해 만든 딥페이크”라고 밝혔다.

이 드라마는 손씨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과거 장면을 모두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었다. 경아(임세주)라는 등장인물은 성형수술을 했다는 설정인데, 성형 전 모습도 딥페이크로 구현했다. 이 감독은 “딥페이크에 돈을 많이 들였지만 리얼리티를 위해서였다”고 했다. 아역 배우를 쓰는 것보다 배우 본인 얼굴을 기반으로 만든 딥페이크가 더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어내는 딥페이크가 영화·드라마 산업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한 영화 제작자는 “제작비와 인건비가 점점 늘어나면서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위해 딥페이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AI 기술 발전이 빠르기 때문에 앞으로 콘텐츠 산업에서의 중요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손석구와 너무 닮은 아역은 AI?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배우의 젊은 시절 모습이 필요하면 배우가 직접 연기한 영상에서 주름살을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지우고 피부톤을 화사하게 매만지거나 얼굴 윤곽을 다듬는 방식으로 나이를 되돌렸다. 영화 ‘국제 시장’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황정민의 20대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여러 장면에 사용할 수가 없다. 한 영화제작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젊은 모습이나 나이든 모습은 주름의 유무만 있을 뿐 나이에 따른 근육의 변화까지 표현하지 못해 어색했다”며 “딥페이크 기술이 등장하면서 배우 혼자 여러 연령대를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창희 감독에 따르면 ‘살인자 ㅇ난감’의 경우 먼저 손석구의 어린 시절 사진 여러 장을 AI에 학습시켜 ‘어린 손석구’의 딥페이크 사진을 만들어냈다. 이어 사진을 3차원 그래픽으로 구현해 다듬은 뒤 손씨와 닮은 아역 배우가 연기한 영상의 얼굴 부분에 합성했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손석구의 어린 시절을 연기할 아역 배우 강지석군을 따로 섭외했다.

AI를 활용한 ‘회춘(디에이징)’ 기술은 2022년 말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 ‘카지노’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다. 배우 최민식씨의 30대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그의 과거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얼굴을 AI가 학습한 뒤 실제 최씨의 연기 영상에 입히는 기술을 사용했다. 제작진은 최씨의 근육 움직임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눈, 코, 입 등 얼굴 부위별로 일일이 구분해 학습시켰다.

◇할리우드에선 딥보이스도 대세

할리우드에선 AI 디에이징 기술이 2019년 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에 쓰이면서 유명해졌다. 아이리시맨은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같은 70대 배우들이 캐릭터의 젊은 시절을 직접 연기하도록 했다. 촬영팀은 디지털 카메라에 적외선 카메라 2대를 결합해 배우의 모습을 3차원 영상으로 촬영했다. AI에는 배우들이 젊은 시절에 촬영한 영화 2년 분량을 학습시켰다. 이를 토대로 연령대, 표정, 카메라 각도, 조명을 고려해 각 장면에 맞는 배우의 젊은 시절 모습을 구현했다. 지난해 개봉한 ‘인디애나 존스5′에서 80세 해리슨 포드가 40대의 시절을 연기한 것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할리우드에선 목소리를 AI로 구현하는 ‘보이스 러닝’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탑건: 매버릭’에 출연한 배우 발 킬머가 인후암 수술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자 AI에 과거 목소리를 학습시켜 현재 나이에 맞는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만달로리안’에서는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 역을 맡았던 68세 배우 마크 해밀의 20대 시절 목소리가 등장한다. 제작진은 AI가 해밀의 젊은 시절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1~2시간이면 충분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