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전시장 ‘피라 그란 비아’. 세계 최대 모바일 박람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4’ 개막을 하루 앞두고 출입이 통제된 전시장 안쪽에선 퀄컴·에릭손·아너 등 2400여 참가 기업이 제품을 진열하는 등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시장 밖에는 참가 기업들의 장외 광고전이 뜨거웠다. 삼성전자가 전시장 대형 옥외 전광판에 갤럭시 S24 광고를 띄웠고, 중국 화웨이는 무선 이어폰과 스마트워치를 내걸었다. 인근 지하철역 벽면은 중국 샤오미 홍보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MWC가 ‘미래가 먼저다(Future First)’를 주제로 26일 나흘 일정으로 개막한다. 올해 MWC는 챗GPT 등장으로 불붙은 인공지능(AI) 경쟁이 모바일 산업을 어떻게 바꿀지 엿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삼성전자의 갤럭시 S24를 필두로 시작된 ‘AI 휴대폰’ 경쟁에 유럽·중국 업체들이 자체 상품을 통해 가세한다. 또 센서를 이용해 원격으로 촉각까지 공유하는 기술 등 최신 신기술도 소개된다. 미·중 갈등 여파로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 불참한 화웨이·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은 MWC를 글로벌 진출 발판으로 삼아 공세를 펼친다.
AI가 화두, 구글 AI 수장도 온다
올해 MWC를 관통할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실생활에 속속 접목되는 AI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가 첫날 ‘우리의 AI 미래’라는 내용으로 기조연설을 한다. 허사비스는 구글이 오픈AI에 맞서 내놓은 생성형 AI 모델 ‘제미나이’ 사업을 이끌고 있다. 바둑 기사 이세돌을 이긴 AI ‘알파고’의 개발 주역이기도 하다. 같은 날 오픈AI 대주주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래드 스미스 부회장도 AI 생태계에 대해 연설할 예정이다.
독일 통신사 도이치텔레콤은 퀄컴, 브레인닷AI와 협력해 만든 ‘앱 프리(앱이 없는)’ AI 스마트폰 시제품을 공개한다. 도이치텔레콤은 “기기에 장착된 AI 비서가 스마트폰의 수많은 앱을 대체할 것”이라고 했다. 메타는 AI를 활용해 화자의 대화 스타일과 톤, 말하는 속도까지 고려해 전달하는 ‘심리스익스프레시브’ 통·번역 기능을 선보인다.
한국 기업 역시 AI를 중심으로 전시관을 꾸렸다. SK텔레콤은 스팸·스미싱 차단 시스템, 콜센터, 바이오 현미경, 개인 비서 에이닷 등 AI 기술을 적용한 다양한 제품을 내놓는다. 작년 7월 도이치텔레콤·싱텔 등 통신사들과 맺은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 협력도 구체화한다.
KT는 오승필 기술혁신부문장(CTO)이 이번 행사 중 열리는 서밋에 참석해 AI 전략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다. 전시관에선 AI 반도체, AI 문맥 맞춤 광고 서비스 등을 살펴볼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구글, 아마존웹서비스, 해외 통신사 등 다양한 영역의 파트너사들을 만나 미래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출시한 AI 폰 ‘갤럭시 S24 시리즈’와 함께 웨어러블 기기인 ‘갤럭시링’ 실물 디자인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올해 출시 예정인 갤럭시링은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면 건강 상태를 알아서 측정해 주는 기기다. 삼성전자는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AI·소프트웨어 기반 차세대 네트워크 설루션도 전시한다.
스페인 통신사 텔레포니카는 홀로그램 원격 회의를 시연한다. 엔비디아와 협업해 개발한 기술로 회의 구성원과 주변 사물을 3차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원격 회의를 할 수 있다. NTT 도코모는 원격으로 촉각·미각 등을 공유하는 기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만지고 있는 사물의 느낌을 멀리서도 비슷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SK텔레콤·KT가 UAM(도심 항공 교통) 체험 공간을 만들고, 미국 스타트업 알레프가 플라잉카를 전시하는 등 모빌리티 분야 혁신도 엿볼 수 있다. 행사를 주최하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는 “AI, 기술의 가능성, 윤리, 일자리 영향 등을 폭넓게 논의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CES에서 안 보였던 중국 화웨이 참여
미·중 관계 악화 이후 유럽 시장에 주력하고 있는 중국 테크 기업들은 신제품을 들고 MWC에 대거 출동한다.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는 참가 기업 중 최대인 9000㎡ 규모 전시장을 꾸렸다. 최근 베이징에 시범 구축한 5.5G 네트워크 기술과 작년 8월 중국에서 내놓은 스마트폰 메이트 60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메이트 60에는 중국에서 자체 개발한 5G 스마트폰용 반도체가 탑재돼 ‘미국의 제재를 뚫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샤오미는 독일 명품 카메라 업체 라이카와 협업해 카메라 성능을 끌어올린 플래그십 스마트폰 ‘샤오미 14 시리즈’와 전기차 ‘SU7′을 전시한다. 스마트폰 제조사 아너는 ‘매직6 시리즈’에서 사용자의 시선만으로 앱을 동작시키는 기능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레노버 산하 모토로라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부릴 수 있는 스마트폰 시제품을 내놓고, 테크노는 롤러블(돌돌 마는) 스마트폰 시제품 등을 선보인다. 미 IT 전문 매체 더버지는 “중국 기업들이 MWC를 그동안 주로 국내에서만 선보여 온 스마트폰을 전 세계에 공개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