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헤드셋 같은 장치나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해 알츠하이머를 치료하고 조기 진단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주로 약물로 치료해온 알츠하이머에 최근 IT 기기를 통한 치료와 진단 기술이 등장하면서 치매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IT 스타트업 코그니토 테라퓨틱스는 최근 자사가 개발한 헤드셋형 치료기기 ‘스펙트리스’<사진>가 알츠하이머로 인한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77% 낮췄다는 임상2상 결과를 발표했다.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코그니토 테라퓨틱스는 약물이 아닌 시각과 청각 자극 등을 사용해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뉴롤로지’에 게재됐다.
헤드셋형 치료기기 스펙트리스는 안경과 헤드셋이 함께 달린 형태다. 번쩍이는 섬광과 소리를 초당 40번 발산해 뇌의 시각과 청각 경로를 활성화시키고 감마파를 자극해 알츠하이머를 치료한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뉴런 간 네트워크가 약화돼 사고력·기억력과 관련된 감마파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상 2상을 통해 74명의 알츠하이머 환자가 매일 1시간씩 6개월간 스펙트리스를 착용하자, 언어와 작문 능력뿐 아니라 기억력, 주의력 감소 속도도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치료를 중단할 정도의 심각한 부작용도 없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기대를 모았던 일라이릴리의 ‘도나네맙’이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연기되는 등 약물 부작용이 치료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무적인 성과를 낸 것이다.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에도 IT 기기가 활용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가상현실(VR) 기기를 활용해 알츠하이머를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용자가 머리에 VR 기기를 착용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따라 목적지를 찾아 나서면 그 행동을 분석해 알츠하이머를 조기 진단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이 43~66세 사이의 알츠하이머 위험이 있는 무증상 성인 10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실생활에는 문제가 없지만 일반인보다 VR로 가상 환경을 탐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전통적인 인지 검사 방식으로는 찾아 내지 못했던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를 VR로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