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 시각) 오전 10시 30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SAP센터.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가 열리는 행사장 앞은 유명 팝스타의 공연을 앞둔 것처럼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최근 테크 업계의 ‘핫스타’로 떠오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기조 연설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였다.
테크 업계에서는 코로나 이후 5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로 돌아온 ‘GTC 2024′를 전설적인 록 페스티벌에 빗대 ‘인공지능(AI)의 우드스톡’으로 부른다.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 점퍼를 걸친 황 CEO가 차세대 AI 반도체와 AI 플랫폼 등 신기술을 공개하며 헤드라이너(페스티벌의 대표 가수) 역할을 맡은 가운데,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오픈AI·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참가 기업 ‘라인업’도 전에 없이 화려하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나흘간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되는 ‘GTC 2024′는 반도체·로봇·자동차 등 분야를 아우르는 기업 300여 곳이 부스를 차려 관객을 맞이하고, 900개 전문가 세션이 마련됐다. 온·오프라인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관객 수는 3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괴물 AI 반도체 ‘블랙웰’ 공개
무대에 오른 황 CEO는 “여러분은 콘서트에 와 있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 어려운 과학 얘기가 나올 것”이라는 농담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가 “컴퓨팅(연산)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칩을 소개한다”고 말하자 1만여 석을 가득 채운 청중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2009년 GTC가 처음 열렸을 당시 관객이 1000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엔비디아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엔비디아가 공개한 차세대 AI 반도체 이름은 ‘블랙웰(Blackwell)’. 2년 전 내놓았던 ‘호퍼(Hopper)’ 대비 개별 그래픽 처리 장치(GPU) 연산 속도는 2.5배 빨라졌고, 시스템을 구성해 AI 학습과 추론을 할 경우 최대 30배 성능을 낸다.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AMD 같은 경쟁 업체를 따돌리고 ‘초격차’를 유지할 괴물 반도체를 들고 나온 것이다.
황 CEO는 블랙웰을 두고 “물리학의 한계를 넘어 칩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블랙웰의 기본 GPU인 ‘B100′은 2080억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돼, 800억개 수준인 전작 H100을 압도한다. 엔비디아는 칩 내부에 두 GPU를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칩으로 작동하는 방식으로 트랜지스터 집적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 결과 H100을 활용해 GPT를 훈련할 경우 8000개의 GPU가 필요하지만, B100의 경우엔 2000개로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황 CEO는 설명했다. 업계에선 H100이 현재 개당 2만5000~4만달러에 거래되는 만큼 B100의 가격이 5만달러 이상으로 책정될 것으로 본다. 황 CEO는 “올해 말부터 판매될 블랙웰은 회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기업에서 ‘AI 종합체’로
엔비디아는 이날 ‘AI 플랫폼 기업’의 역량도 뽐냈다. 자사 GPU를 기반으로 소규모 AI를 개발하고 배포할 수 있는 ‘NIM(엔비디아 추론 마이크로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AI 개발을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통합해 지원하는 ‘AI종합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황 CEO는 “앞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은 로봇이 될 것”이라며, 로봇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그루트’를 공개했다. 무대에는 엔비디아가 직접 훈련시킨 로봇 ‘오렌지’와 ‘그린’이 깜짝 등장했다. 황 CEO는 이 로봇들에 대해 “컴퓨터 그래픽, 물리학, AI의 교차점에 있는 엔비디아의 영혼(soul)”이라고 했다. 엄청난 연산력을 자랑하는 블랙웰 반도체를 기반으로, 엔비디아가 갖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로봇 개발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황 CEO는 지난 2018년 새너제이에 있는 제2사옥 ‘보이저’를 공개하며 “모든 직원이 로봇을 아바타 삼아 원격 근무 할 수 있는 미래를 염두에 두며 설계했다”고 밝힐 만큼 로봇에 관심이 많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AI 기술의 종점은 로봇”이라며 “엔비디아 역시 AI 시대의 우위를 발판 삼아 로봇 시대를 선점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 처리 장치 (GPU)
화려한 게임 속 3D(차원) 이미지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엔비디아가 1999년 내놓은 반도체. 명령어를 입력한 순서대로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다르게 한 번에 여러 계산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데이터 처리 가속에 초점을 맞춘 GPU가 복잡한 인공지능(AI) 훈련과 서비스에 적합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AI 반도체로 각광받고 있다.
☞GTC (GPU 테크놀로지 콘퍼런스)
엔비디아의 개발자 대회. 2009년부터 매년 열린다. 코로나로 2020년부터 온라인 행사로 전환됐던 GTC는 올해 5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로 돌아왔다. 초반에는 게임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3D 이미지 등 그래픽 기술을 토론하는 행사였지만, 몇 년 전부터 인공지능(AI)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올해 GTC는 역대 최대 규모로, 300여 전시 부스와 900여 세션이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