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인도 뉴델리에서 현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벤처 스타트업 인재 매칭 페스티벌’을 열었다. 인도 대학 출신의 개발자나 이공계 인력을 국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연결해 주는 채용 박람회다. 매년 같은 이름의 채용 박람회를 국내에서 개최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인도에서도 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한 국내 스타트업은 120곳에 달하고 인도 대학생도 1000명 넘게 찾았다.
우수 인재의 극단적인 의대 쏠림과 이공계 기피로 인력난에 시달리는 국내 정보 기술(IT) 스타트업들이 개발자를 찾아 인도·베트남·동유럽까지 나가고 있다. 인력 부족에 대한 경고음은 각종 데이터를 통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소프트웨어정책 연구소가 IT 기업을 대상으로 인력 수급을 설문한 결과, 국내 부족한 소프트웨어 인력은 약 2만1300명에 이른다. 이달 초 한국무역협회가 내놓은 보고서는 국내 4대 신기술 분야(인공지능·클라우드·빅데이터·나노)에서 2023년부터 향후 5년간 5만9600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AI(인공지능)·클라우드 두 부문에서만 3만여 명이 부족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소프트웨어 개발자 연봉이 크게 뛰면서, 국내 스타트업들은 인력난과 인건비 급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쓸 만한 개발자들은 네이버, 카카오 등 IT 대기업을 선호하고, 우수한 인재는 실리콘밸리 등 오히려 해외로 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의 약 88%가 스타트업 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는 개발자뿐만 아니라 IT 업계 전 분야에 걸쳐 인력난이 발생하고, 이런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대학별 학과 정원 규제를 없애 미래 신사업 분야 전공자를 늘리고, 고급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인 세미파이브의 임직원 350명 중 80명은 베트남인, 20명은 인도인이다. 대부분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디자이너다. 이들은 현지에서 대학을 나와 세미파이브가 세운 현지 법인에서 근무 중이다.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는 “신입이나 저연차의 경우 한국과 베트남, 인도 직원 간의 역량 차이가 크지 않다”며 “베트남이나 인도의 젊은 직원들은 한국 IT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일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 신입 임금은 국내 3분의 1
서울 강남의 한 이커머스 스타트업은 지난해 말 베트남 개발자를 연결해 주는 외주 업체를 통해 현지에서 원격 근무하는 개발자를 채용했다. 베트남 개발자는 이틀에 한 번 한국 직원과 회의를 하거나 결과물을 공유하며 일을 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요즘 베트남은 학업 성적이 좋은 인재들이 공대를 주로 간다”며 “기술 수준이 높다”고 말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개발자 임금 상향 평준화가 일어났고, 코로나 특수가 끝난 뒤에는 높아진 임금이 스타트업에는 큰 부담이 됐다. 매출이나 수익은 팬데믹 때와 같지 않지만 개발자 임금은 다시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원티드랩에 따르면, 국내 6~8년 차 개발자의 연봉은 2020년부터 반기마다 약 5%씩 상승해 지난해 상반기 6229만원을 기록했다.
베트남 개발자들을 현지 채용한 이커머스 관계자는 “신입이나 저연차 개발자의 연봉을 비교했을 때 베트남이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인도에서 비슷한 연차의 개발자를 채용해도 연봉 2000만~2500만원 정도가 들어 한국보다 부담이 적은 편이다”라고 했다. 지난달 중기부가 인도에서 연 벤처 스타트업 인재 매칭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곳에서 만난 인도 대학생과 개발자들은 스타트업 취업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며 “신입 위주로 인도 개발자를 추가 채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급 인력 확보도 문제
고급 인력 충원을 위해 외국인 채용에 나선 스타트업들도 있다. 자율 주행 스타트업인 서울로보틱스에 근무하는 임직원의 국적 수는 12개다. 개발자와 엔지니어의 40%가 외국인으로 독일뮌헨공대(TUM),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스웨덴 왕립공과대(KTH) 등 해외 유명 공과대학 출신들이다. 사내에 외국인이 많다 보니 업무 보고나 회의의 기본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다. 국내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경쟁에 적합한 고급 인재를 국내에서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10여 년 전만 해도 해외 유학 이후 한국에 돌아와 IT 업계에 종사하거나 창업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국내 대우가 열악하다 보니, 고급 인재는 현지에 눌러앉는다”고 말했다.
교육 스타트업인 데이원컴퍼니는 동남아시아, 일본에 진출하면서 외국인을 11명 채용했다. 데이원컴퍼니 관계자는 “이들 대부분은 해외 진출 기업에서 마케팅이나 영업, 개발 등의 업무를 총괄한 적이 있는 경력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