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국내 대표 IT 보안 기업 안랩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기업 SITE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중동 시장 공략에 나선다. 1일 안랩은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이 전액 출자한 사이버 보안 및 클라우드 기업인 SITE와 현지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안랩이 25%, SITE가 75%의 비율로 공동 출자해 올해 상반기 내 법인 설립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동시에 SITE의 자회사인 SITE벤처스가 약 744억원을 들여 안랩 지분 10%를 인수한다. 6월 말 납입이 완료되면 SITE벤처스는 안철수 안랩 창업자에 이어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린다. 강석균 안랩 대표는 “이번 합작법인 설립으로 안랩의 보안, 클라우드 설루션(solution)의 사업 범위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확대해나가겠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오일 머니’와 한국 IT 기업들 간의 협업이 긴밀해지고 있다. 석유 산업에서 IT·콘텐츠 등 첨단 분야로 산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과 새로운 시장과 투자처를 찾으려는 국내 IT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네이버·넥슨과 같은 IT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들도 연달아 오일 머니 유치에 성공하며 시장 확대에 나섰다.

그래픽=양인성

◇중동 시장을 잡아라

국내 기업 중 중동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은 네이버다. 네이버는 지난달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사우디 국영 아람코의 디지털 기술 전문 자회사 ‘아람코 디지털’과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아랍어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해 중동·아프리카 시장을 함께 공략한다는 것이다. 네이버가 지난 1년간 중동 사업 진출을 위해 중동 및 국내 기업과 맺은 MOU만 10여 건에 달한다. 가시적 성과도 나오고 있다. 네이버는 작년 10월 사우디 정부로부터 1억달러(약 1349억원)짜리 사업을 따냈다. 수도 리야드를 비롯해 5개 도시를 가상 공간에 구현해 각종 도시 계획을 추진하는 ‘디지털 트윈’ 플랫폼 사업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단순히 시설이나 설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부24와 비슷한 정부 행정 서비스를 구축하거나 사우디 국가 전체를 스캔해 가상 세계로 만드는 프로젝트 등 사우디 전반의 디지털 전환 사업을 네이버가 주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업계는 UAE를 거점 삼아 중동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넥슨은 최근 대체불가토큰(NFT) 기술을 활용한 블록체인 게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UAE에 ‘넥스페이스’ 법인을 설립했다. 넥슨 측은 블록체인 기반 생태계인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의 사업 확장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블록체인 게임사 위메이드와 네오위즈홀딩스도 게임 자회사를 각각 UAE에 세웠다.

◇'오일 머니’ 투자 유치에도 주력

국내 IT 업계는 중동 시장 공략뿐 아니라 중동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초 국내 AI(인공지능)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 페블스퀘어의 사우디 합작법인은 현지에서 7500만달러(약 1011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중동 자본이 국내 AI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에 투자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호텔 같은 숙박·레저 시설의 디지털 전환과 위탁 운영을 도맡는 국내 스타트업 ‘H2O호스피탈리티’는 아부다비투자청, 사우디 투자부, 사우디관광펀드, 사우디국가개발기금 등과 잇따라 투자 계약을 맺었다. 구체적인 투자금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 돈으로 작년 11월 사우디에 아예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국내 게임 업계도 중동과 끈적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우디 PIF는 2022년부터 넥슨에 2조원 이상을 투자해 10% 지분을 확보했다. 엔씨소프트에도 약 1조1000억원을 투자해 9.3%의 지분을 획득하며 2대 주주 자리에 올라 있다.

하지만 국내 IT 업계와 중동 국가 간의 협업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테크 기업에 대한 중동 국가들의 투자를 바라보는 글로벌 IT 업계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이 최근 새로운 투자자를 찾는 과정에서 국가 안보를 이유로 사우디 PIF의 투자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UAE의 일부 테크 기업이 중국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일부 기업이 화웨이 등 중국 기업과 안보 및 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