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과 대체재로 떠오른 바나나의 수입 관세를 낮추는 것 만으로 (사과 가격이 안정될 지) 안심할 수 없습니다. 국내에 들어오는 바나나 중 필리핀산이 70%를 차지하는데, 최근 중국으로 가는 물량이 많아 우리가 빼 오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죠.”
애그테크(AgTech·농업 기술) 스타트업 ‘트릿지’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를 활용해 지난달 캄보디아산 바나나 수입처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필리핀산보다 가격이 저렴한 캄보디아산 바나나가 국내에 수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무실에서 만난 신호식(47) 트릿지 대표는 “도미노 효과가 심한 국제 농산물 시장에 대응하려면 정확한 생산·판매 데이터를 최대한 빨리 확보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동원해 발 빠르게 상품을 사고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설립한 트릿지는 농·축·수산물에 대한 각종 현지 생산·판매·무역 정보를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200여 현지 직원이 자체 개발한 AI 기술로 수집·분석해 글로벌 기업들에 제공하는 데이터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지난 9년간 97국 1741품목에 대한 마켓 데이터 7억6700만건 이상을 수집했다. 코스트코⋅월마트⋅이마트⋅델몬트⋅돌(Dole) 같은 유통 대기업과 맥킨지⋅PWC⋅딜로이트 같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을 포함한 59만 고객사가 이런 데이터를 활용한다. 실제 트릿지는 고가의 프리미엄 과일로 인기를 끌던 ‘샤인머스캣’ 가격이 국내 재배 농가 증가로 2021년 폭락하기 시작하자, 과잉 생산 샤인머스캣 소비처로 중국을 발굴해 100t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가격 방어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런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업 모델로 2022년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이 됐고, 당시 인정받은 기업 가치는 3조6000억원이다.
신 대표는 앞으로도 과일 가격이 더 요동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과거에는 주로 선진국이 몰린 북반구에서 과일을 소비했지만, 생산지였던 남반구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선진국과 소비 행태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2020년 이후 포도·마늘 같은 이집트 농산물과 유럽산 키위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 국가들에 처음 수출되기 시작했다”며 “남반구 국가의 내수 증가는 기존 생산국들의 수출 제한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결국 국제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릿지는 지난해 674억원 매출과 333억원 영업적자를 냈다. 매출이 전년 대비 35% 줄었지만, 영업적자 규모 역시 전년(599억원) 대비 266억원 줄었다. 신 대표는 이에 대해 “작년부터 데이터 사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며 “올 초부터 월간 기준 손익분기점에 근접한 상황이라 올해는 연간 흑자 전환을 자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