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아시아·중동 생산 거점 역할을 할 신규 전기차·배터리 조립 공장 ‘기가팩토리(Gigafactory)’를 인도에 지을 전망이다. 그동안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 다수 국가가 유치전을 벌였지만, 최종 인도를 낙점한 것이다. 10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달 말 인도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만나고, 인도에 신규 테슬라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인도가 글로벌 테크 기업의 새로운 아시아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에 생산 기지를 구축했던 애플과 테슬라 등 주요 미국 빅테크들은 미·중 갈등 속에 대대적인 ‘차이나 엑소더스(대탈출)’에 나서면서 인도에 새로운 둥지를 만들고 있다. 인도는 뛰어난 IT 전문 인재와 값싼 제조 인력, 14억명에 달하는 거대 시장을 내세워 이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발 빠르게 관세 인하 등의 혜택을 내놓고 있다. 테크 업계에선 “인도가 가전 등 전통 제조업 중심에서 최근엔 첨단 분야로 산업의 축을 옮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교통·환경 등 열악한 인프라와 취약한 산업 생태계 때문에 본격적으로 중국을 대체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빅테크들, 줄지어 인도로
인도 정부는 지난달 ‘최소 5억달러(약 6819억원)를 투자하고 3년 안에 전기차를 생산하는 업체에 최대 100%인 수입 전기차 관세를 15%로 대폭 인하’하는 정책 시행에 들어갔다. 머스크가 신규 공장 건설 후보지를 검토하며 인도 정부에 수입 관세 인하를 요구해왔는데, 인도가 이를 즉각 수용한 것이다. 테슬라는 이 정책을 활용해 향후 20억~30억달러를 들여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고, 테슬라의 차세대 수입원으로 꼽히는 저가 전기차 생산을 이곳에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인도 서남부 마하라슈트라주, 구자라트주 등이 주요 후보지로 꼽힌다.
애플은 인도 내 생산 물량을 대폭 늘리고 있다. 10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 기간 인도에서 전체 아이폰의 14%를 생산했다. 아이폰의 인도 생산 비율이 전년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약 7대의 아이폰 중 1대가 인도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재작년까지 90%를 웃돌던 아이폰의 중국 생산 비율은 80%대로 하락했다. 애플의 ‘탈중국’ 기조에 발맞춰 애플의 최대 위탁 제조 업체인 대만 폭스콘 역시 총 27억달러 규모를 투자해 카르나타카주에서 애플 생산 기지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는 당초 예정했던 투자액보다 10억달러가량 늘어난 것이다.
반도체 기업들도 인도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은 구자라트주에 27억5000만달러 규모의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만들고, 올해 말부터 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전체 투자금 중 마이크론이 내는 자금은 8억달러, 나머지는 인도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는 벵갈루루에 4억달러를,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꼽히는 AMD 역시 벵갈루루에 4억달러를 쏟아 반도체 연구 캠퍼스를 짓기로 했다.
◇인도가 중국 대체할 수 있을까
빅테크들이 중국의 대체 시장으로 인도에 진출하는 것은 중국의 매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 속 미국 정부의 제재로 대중 투자가 막혀 있고, 첨단 장비의 중국 반입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각종 혜택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한 중국의 전기차·스마트폰 기업들이 빅테크를 위협하고 있다. 테슬라 전기차와 아이폰의 중국 내 판매가 급감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중국 내수 시장의 부진도 테크 기업엔 악재다. 중국의 임금도 인도의 4배 수준으로 뛰었다.
하지만 인도가 당분간 중국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기간 글로벌 기업들의 ‘제조 허브’로 군림했던 중국에는 촘촘한 부품 공급망이 있는데, 인도는 이 같은 ‘풀뿌리 산업’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테크업계 관계자는 “인도 정부가 모바일 부품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는 등 테크 기업 유치를 위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30년 이상 축적된 중국의 산업 생태계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