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대유형)이 끝난 후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서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쓸 일이 많아졌다. 돌아온 후 여행경비를 정산하다 보면, 카드 결제액에 붙는 각종 수수료가 적지 않다. 이를 아끼려고 여행 전 은행 창구에서 현금으로 현지 통화를 환전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이 같은 수수료를 완전히 없앤 트래블 카드(여행자 신용카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 카드 결제 수수료 0원’을 내세운 상품들이 시중은행과 카드사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만든 곳은 2017년 창업한 국내 스타트업 ‘트래블 월렛’. 국제금융센터와 삼성자산운용에서 외환 업무를 맡던 김형우(40) 대표가 4년여 개발 끝에 2021년 내놓은 외화 선불 충전카드 ‘트래블페이’가 MZ 사이에서 ‘해외 여행 필수품’으로 통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출시 이듬해 62만장, 지난해 400만장, 올해 4월 말 기준 530만장(누적 기준)이 발행됐다. 지난해 이 카드의 해외 결제액만 2조1164억원. 국내 주요 은행과 카드사들을 제치고 개인 고객 기준 해외 결제액 1위 카드로 올라섰다. 최근 만난 김 대표는 “기존 시스템에서 결제에 꼭 필요하지 않은 과정을 모두 없앴더니 수수료가 거의 0원이 됐다”고 했다. 수십 년간 관행적으로 해오던 결제 시스템을 어떻게 바꿨을까?
◇수수료 0원의 비결
트레블페이는 앱을 통해 달러·엔·유로를 원화 180만원 한도 내에서 충전하면 세계 1억 곳의 비자 가맹점에서 수수료 없이 결제할 수 있는 일종의 외화 선불충전카드다.
현재 해외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수수료가 붙는다. 우선 비자나 마스터 같은 해외 결제 네트워크에 지불하는 ‘국제 브랜드 수수료’로 보통 결제액의 1% 내외다. 그다음 결제 과정에서 현지 은행 등에 지불해야 하는 ‘해외 서비스 수수료(결제액의 0.2~0.6%)’가 있다. 마지막으로 카드 결제 시 적용되는 환전 수수료인 ‘전신환 매도율(1%)이다. 결국 1000달러짜리 물건을 샀을 때 대략 2.6%, 약 26달러(약 3만5600원)의 수수료가 붙는 것이다.
트래블 월렛은 각 단계를 하나씩 없앴다. 우선 환전 수수료를 없앴다. 최근 은행들은 앱으로 환전을 하면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혜택을 제공해 준다. 트래블 월렛도 앱을 통해 원화를 현지 통화로 실시간으로 환전해 충전하는 방식을 채택해 환전 수수료를 없앴다. 그다음은 현지 금융 전산망 이용 수수료. 보통 여행지 매장에서 결제를 하면 현지 은행이나 카드사 전산망을 거쳐야 하고, 그 대가로 소액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트래블 월렛은 여행자 카드에서 비자를 거쳐 곧바로 매장에 결제액을 송금해 주는 새로운 시스템을 클라우드(가상 서버)에 구축했다. 마치 가게 주인의 통장으로 송금하는 것처럼 직거래를 하는 것이다.
국제 결제망을 가진 비자 카드 수수료도 크게 낮췄다. 김 대표는 “비자 카드에는 최저 수준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이는 회사 수익으로 대신 지급해 고객 부담을 ‘0′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트래블 월렛은 어떻게 수익을 낼까? 이 회사는 고객이 결제할 때마다 현지 매장으로부터 가맹점 수수료(1.8%)를 받는다. 처음엔 큰돈이 아니었지만, 고객이 늘면서 수익도 덩달아 커졌다.
트래블 월렛의 성공 이후 시중은행과 카드사들이 앞다퉈 비슷한 카드를 내놨다. 하지만 이들은 시스템 혁신 없이 아직은 결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회사가 직접 부담하는 방식으로 상품을 운영한다.
◇'클라우드 금융 시스템’이 진짜 무기
트래블 월렛은 해외 결제 시스템을 혁신한 비결인 ‘클라우드 방식의 결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앞으로 B2B(기업 간 거래)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김 대표는 “아직 사업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년간에 걸쳐 쌓여온 결제 및 각종 데이터가 기존의 방식으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다”며 “복잡한 금융 전산망을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했다. 5년에 걸쳐 자체 구축한 결제 시스템과 외환 설루션(solution)을 고객사에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처럼 금융업의 TSMC가 되는 게 목표”라며 “금융에 관련된 여러 설루션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만들어서 어떤 고객사든 편하게 갖다 쓸 수 있게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