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확실성으로 전 세계 벤처 투자가 위축되고 있지만, 한 번에 1억달러(약 1360억원) 이상을 조달한 투자 건수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미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사례는 줄고, 사업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특정 분야나 소수 스타트업에 자금이 쏠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타트업 전문 시장조사 업체 ‘CB인사이츠’가 지난달 낸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세계 벤처 투자액은 약 584억달러(약 79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직전 2023년 4분기(528억달러·71조6000억원)에 비해선 약 11% 증가했으나 1년 전인 2023년 1분기(740억달러)에 비해선 21% 감소했다. 1540억달러를 기록한 2022년 1분기에 비하면 62% 줄었다. 분기별 벤처 투자 규모는 2021년 4분기 1815억달러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 번에 1억달러 이상의 거액 자금을 조달한 ‘메가라운드’ 건수는 늘었다. 지난 1분기 메가라운드 펀딩 횟수는 105건을 기록, 합계액은 262억달러에 달했다. 전체 584억달러의 약 45%가 메가라운드를 통해 조달됐다. 직전 분기에는 메가라운드가 81건 이뤄졌고, 전체 벤처 투자 금액 중 비율은 34%였다. 건수·비율 모두 증가한 것이다. CB인사이츠는 “인공지능(AI),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받는 등 일부 산업이 다른 산업을 압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고금리발 투자 한파에 전쟁 등 불확실성이 겹치며, 투자자들 사이에서 도전보다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업계 상황도 비슷하다. 스타트업 지원 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리포트에 따르면, 헬스케어·반도체 등 일부 분야에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 투자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무대를 겨냥해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는 다양한 영역의 중기 단계 스타트업이 투자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