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표 가전기업들이 나란히 글로벌 공조(空調)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공조 사업은 난방, 환기(Ventilation), 냉방 등 실내 공기를 쾌적하게 유지해 주는 시스템으로, 흔히 냉난방 설비를 말한다.
이들 기업이 그동안 전통 산업으로 인식되던 공조 시장에 공을 들이는 것은 데이터센터 등 신산업에서 열관리가 핵심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또 탄소배출 등 환경 문제 때문에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 냉난방하는 기술이 중요해졌다. LG전자는 세계 곳곳에서 지어지는 데이터센터와 배터리 등 각종 공장에서 잇따라 공조 사업을 수주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도 미국 냉난방공조 기업 레녹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가전 업체들이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 시장이 해외 공조 시장”이라며 “그동안 축적해온 기술을 바탕으로 새 먹거리로 보고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열(熱)’을 잡아라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이 같은 공조 시스템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AI 수요 폭발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데이터센터가 지어지면서 이곳의 열을 관리하는 기술과 공기 순환 시스템이 함께 뜨고 있는 것이다.
LG전자는 초대형 냉방기 ‘칠러’를 활용해 세계 곳곳에 지어지고 있는 데이터센터에 냉각 설비를 공급하고 있다. 칠러는 차갑게 만든 물을 열교환기를 통해 순환시켜 시원한 바람을 공급하는 설비다. LG전자는 2011년 LS엠트론의 공조사업부를 인수하며 칠러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배터리 공장, 원자력발전소에 열 관리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칠러 사업 매출이 전년 대비 30% 가까운 급성장을 이루면서 열 관리 전문 업체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은 지난해 149억달러에서 2030년 303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최근 잇따라 지어지고 있는 배터리나 반도체 공장에도 이 같은 열관리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일반적인 에어컨으로는 열 관리가 어려워 초대형 칠러가 필요한 것이다. LG전자는 최근 북미에 신설되는 배터리 공장에 신규 수주를 따냈다. 오텍캐리어도 고효율 냉동기를 기반으로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과 드라이룸에 공조 설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오텍캐리어 관계자는 “지난해 폴란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공조 시스템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친환경 ‘히트펌프’로 유럽·북미 공략
산업용뿐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친환경 바람으로 가정이나 상업 건물에서도 탈(脫)탄소 가전제품이 주목받으면서 국내 기업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히트펌프 기술력을 내세워 현지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히트펌프는 보일러를 대체하는 공조 시스템으로 외부 공기나 땅·물이 가진 열을 끌어와 냉난방을 하는 장비다. 전기에너지는 20~30%만 사용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등 탄소 배출을 줄여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이번 레녹스와의 합작법인 설립으로 레녹스의 판매망을 이용해 기존 삼성전자의 고효율 냉난방기기 판매에 적극 나선다.
LG전자는 현지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북미, 유럽 등 주요 지역에 연구개발부터 생산, 영업, 유지보수로 이어지는 ‘현지 완결형 사업구조’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과 독일, 인도에 처음으로 공조 서비스 유지 보수 전문 자회사인 하이엠솔루텍 해외 법인을 만드는 등 세계 10국에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혹한에서도 고성능을 내는 냉난방 공조 제품을 연구 개발하기 위해 미국 알래스카에 ‘히트펌프연구소’를 신설하기도 했다.
☞공조(空調) 시스템(HVAC)
난방(Heating), 환기(Ventilation), 냉방(Air Conditioning System) 등을 통해 건물과 차량 등 실내를 쾌적하게 유지해주는 공기 조절 시스템을 말한다. 일본 다이킨, 미국 캐리어, 존슨콘트롤스, 중국 그리, 독일 보쉬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