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빠지며 ‘AI 거품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업계에 ‘AI 워싱(AI washing)’ 주의보가 내렸다. ‘AI 워싱’은 AI와 관련이 적거나 없는데도 마케팅을 위해 AI 기술을 활용한다고 포장하는 ‘무늬만 AI’ 기업을 말한다. 기술력 없이 AI 대세론에 편승한 마케팅이 오히려 AI 산업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마존고 혁명, 허상이었나?

AI 워싱의 대표적 사례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무인 매장 ‘아마존 고’가 거론된다. 아마존은 2018년 고객이 들어와서 필요한 물건을 집어 들고 나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계산해 준다는 ‘아마존 고’를 처음 선보였다. 센서와 카메라 수천 대가 고객이 어떤 물건을 구매하는지 자동으로 인식하고 계산한다고 했다. 아마존은 “AI로 운영되는 점원 없는 매장”이라며 홍보했다.

그래픽=김현국

하지만 이런 시스템 뒤에 실제로는 사람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4월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아마존이 무인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인도에서 직원 약 1000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 직원들이 각 매장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고객이 무엇을 들고 나갔는지 체크해 수작업으로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인도 근로자들이 검수 작업을 한 것뿐”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아마존의 신뢰성엔 이미 금이 갔다.

AI 워싱의 유형은 다양하다. 단순한 자동화 기능이나 인식 기술에 AI라는 이름을 갖다 붙여 과장 광고를 하는 방식이 가장 흔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4월 AI가 탑재됐다고 홍보하고 있는 오럴비의 칫솔을 이런 사례로 지목했다. 이 칫솔은 AI가 치아 위치와 밝기 등을 파악해 이가 잘 닦였는지 알아낼 수 있다고 광고하지만, WP는 “이 칫솔에 AI 기능이 정확히 어떻게 적용되는지 물었지만 회사는 대답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코카콜라가 지난해 내놓은 ‘인간과 AI가 함께 만든 최초의 한정판 맛’이라는 Y3000도 같은 사례로 거론된다. 이 제품에 AI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포브스는 “제품이 더 혁신적으로 보이도록 AI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간단한 데이터 분석 도구를 활용했는데도 AI 기반 예측 모델을 도입했다고 광고하거나, 일반적 알고리즘을 써놓고도 AI의 딥러닝(AI가 인간 뇌처럼 스스로 학습)을 활용했다고 홍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국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선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과장을 넘어 허위로 AI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 자문 회사 델피아와 글로벌프리딕션스에 벌금을 40만달러(약 5억4500만원) 부과했다. 이들은 투자 프로세스에 AI와 머신 러닝을 사용한다고 광고했지만 사실상 AI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AI가 붙으면 돈이 된다

기업들이 ‘AI 워싱’을 하는 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포브스는 “AI를 언급한 스타트업은 그러지 않은 스타트업보다 적게는 15%, 많게는 50%까지 투자를 더 유치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특히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AI를 과대 광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둔 테크 회사 투자 펀드인 오픈오션에 따르면 AI 사용을 언급하는 기술 스타트업은 2022년 10%였지만 지난해에는 25% 이상으로 늘었고 올해는 33%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픈오션의 스리 아양가는 BBC에 “내부 분석 결과 AI 역량을 주장하는 기업과 실질적인 AI 기업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며 “자금 조달 때문에 일부 기업이 AI 역량을 과장하고 있다. 창업자들은 투자를 받을 때 AI를 언급하지 않으면 불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근본적으로 아직 AI라는 용어가 제대로 정의되지 않아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세계적 회계 컨설팅 기업 KPMG의 신기술 리스크 책임자 더글러스 딕은 “사람들에게 AI의 정의를 물으면 모두 달리 대답할 것”이라며 “이처럼 합의된 정의가 없다는 점 때문에 AI 워싱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AI 워싱 (AI Washing)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할 때 인공지능(AI)의 역할을 부풀리거나, AI 기능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지어내는 것. 마케팅과 이윤을 목적으로 친환경 경영을 하는 것처럼 거짓으로 홍보하는 ‘그린 워싱’에서 따왔다.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AI 워싱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