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전성기를 이끌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러브프롬’ 최고경영자(CEO)가 이번엔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인공지능 기기(디바이스) 제작에 나선다. 22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이브는 지난해부터 올트먼과 오픈AI의 챗GPT를 구동할 수 있는 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잡스의 곁에서 아이폰 디자인을 성공시킨 그가 생성형AI 시대의 물꼬를 튼 올트먼과 손을 잡은 것이다.
IT 업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최고 설계자들이 손을 잡고 새로운 AI디바이스 개발에 나선 것은 앞으로 생성형AI 가 보급되면 개인용 컴퓨터(PC)나 스마트폰을 뛰어넘는 AI 중심의 기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 초 이미 해외 스타트업들이 개발한 AI 디바이스들이 시장에 나왔고, 삼성·애플·구글도 자사 제품에 AI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AI기기를 앞다퉈 출시하면서 AI디바이스의 경쟁에 불이 붙었다.
◇업계 1인자들의 의기투합
올트먼과 아이브의 협업에 글로벌 테크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아이브의 독보적 이력 때문이다. 영국 출신의 아이브는 유명 디자인 회사 텐저린을 거쳐 1992년 애플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1998년 돌아온 잡스는 아이브를 발탁해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잡스로부터 ‘영혼의 단짝’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 대표 상품의 디자인을 주도했다. 잡스의 별세 후 아이브는 2019년 6월 애플을 떠나 디자인 회사 러브프롬을 창업했고, 이후 몇 년간 애플의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2022년 애플과 완전히 결별했다.
러브프롬이 에어비앤비의 디자인을 맡으면서 아이브는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CEO의 소개를 통해 올트먼을 만났다. NYT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생성형AI가 어떻게 새로운 컴퓨팅 기기에 적용돼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의기투합을 했다. 두 사람은 AI디바이스 개발 투자금으로 10억달러를 모금하고 있다. 업계 일인자들이 손을 잡았단 소식에 인재도 모였다. 블룸버그는 “아이폰과 애플워치 디자인 담당인 탕 탄 애플 전 부사장을 비롯해 애플 직원 20명 이상이 러브프롬의 하드웨어 기술 부문에 합류했다”고 전했다.
◇스마트폰 밀어낼 새 AI기기
AI디바이스 경쟁은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등장한지 1년이 지난 올해부터 시작됐다. 삼성전자가 지난 1월 온디바이스 스마트폰인 갤럭시 S24를 선보였고, 샤오미와 애플도 잇따라 자사 기기에 AI 기능을 더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 AI디바이스는 기존 기기에 AI 기능을 더한 것과는 달리, 온전히 AI 활용을 위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스마트폰을 열어 애플리케이션(앱)을 구동하지 않고도 음성이나 행동으로 AI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미국 스타트업 래빗이 지난 1월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 2024’에서 발표한 R1은 출시 발표 하루 만에 1만대가 팔렸다. 챗GPT처럼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답하는 자체 AI 모델이 탑재됐고,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할 수 있게 했다. AI와 잡담, 쇼핑, 호텔 예약, 메시지 보내기 등 스마트폰의 일부 기능을 AI로 제어할 수 있다. 또 다른 미국 스타트업 휴메인이 4월에 출시한 AI핀은 GPT-4 기반의 챗GPT를 구동하는 기기로 보디 캠처럼 몸에 부착해서 사용 가능하다. 사용자는 AI 핀에 말을 걸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정면의 카메라를 통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
아이브와 올트먼이 개발하는 디바이스는 오픈AI 기술을 활용한 ‘AI 비서’로서 사용자가 필요한 기능을 실시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시 시기나 형태, 기능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NYT와 IT 전문 매체인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스마트폰과는 아예 다른, 새로운 형태의 기기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용자가 보고 듣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목걸이나 안경처럼 몸에 밀착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올트먼이 휴메인 AI 핀의 주요 투자자이기 때문에 그가 아이브와 비슷한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