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미국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사용을 사실상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미국 경제전문 매체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중국 당국이 자국 기업들에 AI 모델을 개발하고 운영할 때 사용되는 엔비디아의 중국용 AI 반도체(H20)를 구매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H20은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대중 제재를 피하기 위해 성능을 낮춘 중국용 AI 반도체다. 중국 정부는 이런 반도체마저도 미국에 의존하지 말라고 자국 기업에 요구한 것이다.
이번 지침은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정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중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상 금지와 같은 효과를 낸다. 블룸버그는 “미국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전면적인 금지보다는 지침의 형태를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폰 이어 미국산 AI 칩 퇴출시키나
중국 규제 당국은 최근 몇 달간 자국 기업들에 엔비디아의 H20 칩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부가 보낸 권고안에는 엔비디아 칩 대신 화웨이, 캠브리콘 등 자국 기업의 칩 구매를 장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중국 공업정보화부 등 규제 당국은 올해 초 비야디(BYD) 같은 중국 전기차 업체에 자국 칩을 구매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이 같은 지침을 최첨단인 AI 반도체까지 확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AI 반도체보다는 범용 기술이다.
중국 당국의 이번 조치는 자국의 AI 반도체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내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내세우고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5월에는 3440억 위안(약 64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기금을 추가로 조성했다.
성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화웨이는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설계한 기린칩뿐 아니라 엔비디아에 대항하겠다며 개발한 어센드칩 등을 자사와 바이두 등 중국 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 메모리 회사인 창신메모리 등은 최근 자체 기술로 핵심 AI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화웨이는 최근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 H100에 필적하는 어센드910C 칩 개발을 완료하고 10월 중 양산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로 인해 엔비디아의 중국 반도체 매출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는 2022년 말 시작된 미국 정부의 최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로 자사의 최신 제품인 A100과 H100의 중국 수출이 막혔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의 대중 제재로 중국 매출에 타격을 받은 엔비디아가 또 한 번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봤다.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 추세다. 2022년 1분기 24.6%에서 가장 최근인 2025년 2분기(회계연도 기준) 12.2%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번 조치 대상인 엔비디아의 H20에는 삼성전자의 HBM3가 탑재된다.
◇中 반도체 굴기 성공할까
중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자국 칩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 그 결과가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의 제품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가 화웨이 노트북 칭원 L540(Qingyun L540)을 해체해 분석한 결과, 주요 칩 5개 가운데 3개가 중국산 제품이었다. 칭원 L540은 중국의 상당수 정부 기관이 쓰고 있다. FT는 “수십 년간 중국 정부는 반도체 국산화를 추진했지만 진전이 더뎠다”며 “하지만 미국의 제재 이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부품 국산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말 화웨이가 내놓은 신규 스마트폰에 쓰인 부품의 90%가 중국산이었다. 올해 초에는 D램과 낸드까지 자국산 제품으로 대체하면서 현지에서는 사실상 100%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2020년 출시됐던 ‘메이트 40′의 국산화율은 29%에 불과했는데, 4년 만에 국산화율을 3배 이상 끌어올린 것이다.